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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7구간, 송정마을 - 오미마을 "2025. 7. 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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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7구간, 송정마을 - 오미마을 "2025. 7. 27."

지리산 독사 2025. 8. 3. 17:01

▲ 지리산 둘레길 송정마을 시종점

▲ 의승재

    초입 송정마을에서 약 1km정도를 급하게 오르면 일본군과 싸운 승병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 의승재에서 후미를 기다려 단체사진 남기고 출발했다

▲ 오미마을 시종점 자화상

▲ 지리산 둘레길 안내도

▲ 지리산 둘레길 17구간 송정마을 - 오미마을 안내도

▶ 언 제: 2025. 7. 27(일). 10:10경 산행시작 ------ 5시간 40분소요(알탕 2번 포함, 시간 의미 없음)

▶ 어 디: 송정마을 - 의승재 - 송정계곡(석주관 갈림길) - 원송계곡 - 구례 노인요양원 - 솔까금마을 - 문수저수지 - 내죽마을 - 하죽마을 - 오미마을  ... 약 10.4km

▶ 송정 - 오미마을 구간은 구례군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로 농로, 임도, 숲길 등으로 이어진 10.4km의 둘레길이다. 숲의 모습 또한 다체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긹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송정마을에서 출발해 약 1km의 오르막길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하고 숲길이 많은 편이라 걷기에 좋다. 오미마을은 조선시대 양반가를 엿볼 수 있는 운조루로 유명하다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 있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 솢어마을 시종점인 이곳에서 좌측으로 숲길을 약 1km오르면 오늘의 최고높은 곳 의승재를 만난다

▲ 조금 오르면 옛 조상들의 집터와 경작지의 흔적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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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길에도 평지가 있어 영상으로 담아 조았다

▲ 의승재 도착, 이곳에서 쉬면서 후미를 기다려 단체사진 남기고 간다

    지리산 둘레길 17구간은 곳곳이 정유재란 때 일본과 싸운 흔적이 전설처럼 간직하고 있다

▲ 의승재에서 잠시 내려가면 석주곡수까지 편백나무 숲이 이어진다

    석주곡수는 정유재란 때 구례선비 왕득인 등 수많은 구례 의병들과 화엄사의 승병들이 왜군에 맞서 백병전을 벌인 피의 전장이다. 순절한 의병, 승병들이 흘린 피가 흘렀던 계곡물은 혈천(血川) 또는 피내라 불리며 석주관 칠의사묘 앞을 지나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 석주관 갈림길인 송정계곡을 지나가는데, 아무도 풍덩안하네 ㅎㅎㅎ

▲ 밤나무 밭이 있는 이곳을 지나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그늘에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였지만 햇볕으로 나가면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라 콘크리트 도로는 나가기 싫었다

▲ 쉬어 가고싶은데 ㅎㅎㅎ

    이곳을 지나면 다시 숲길이다

▲ 원송계곡

    너무 더워 이곳 원송계곡에서 신발을 벗고 풍덩거리며 신나게 놀다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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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을 벗어나고 이내 감나무 농장을 만나는데, 옛날에 감나무는 심어서 비료만 주고 수확을 했는데 이곳에는 스프링쿨러까지 작동하였네요

▲ 구례 노인요양원 아래 정자 쉼터, 이곳은 '구례길 스템프'가 있는 곳으로 남도 이순신 길을 따른다

    남도 이순신 길은 정유재란이 있었던 1597년 당시 관직에서 파직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을 모아 명랑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을 '조선수군 재건로'로 명명하여 역사스토리 테마길로 조성하였다 

 

▲ 노인 요양원을 지나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된다

▲ 솔까금 마을을 지나간다

    이곳도 어려운 경제사정을 피하진 못했는지 곳곳에 매매가 나와 있었다

▲ 문수저수지를 지나 조기 아래 내죽, 하죽 마을을 지나 오미마을로 가면 되는데, 너무 덥네요

▲ 내죽마을에서 올려다 본 문수저수지

▲ 농촌 일손이 부족한가 아니면 땡볕이라 고추를 따지 못하는 건지 ㅎㅎㅎ

▲ 내죽마을 경로당

    내죽마을의 유래는 약 500년 전인 1,500년경 진주하씨. 김해김씨. 경주이씨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문화유씨, 진주정씨, 밀양손씨 등이 입촌하면서 큰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중심에 당산나무를 보아도 마을의 형성 시기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가 큰 마을에 울창하여 대를 상징한 대(竹)자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따서(내)인 '대내'라고 불렀다는 설과 안쪽에 있다하여 내죽(內竹)이라 불렀다 한다 

▲ 내죽마을을 지나면서 이곳 문수리 입구에서 또 알탕을 하며 땀을 식히고 후미를 기다렸다

▲ 하죽(下竹)마을을 지나간다

    선비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하죽마을의 유래는 조선 영조 중엽(1754년) 경주이씨 이기명이 길지(吉地)를 찾아 조선 팔도를 헤매다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정착하였다. 그후 택리지의 가거지(可居地) 6처(處) 중 가장 살만한 곳으로 숨겨져 있던 땅 구례가 소개되면서 각지에서 양택명당을 찾아 이곳으로이주 해와 촌락이 형성되었다. 대나무가 온 마을에 울창하여 '대내'라 하였고, 하죽은 아랫마을, 아랫대내', '바깥대내'로 오랫동안 불리워 왔다

▲ 도로를 걸어가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580에 있는 수령 250년 된 서어나무를 만나는데 1982. 12. 3.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오미마을에 있는 구례군 관광안내도

    안내도 우측으로 운조루가 있다

▲ 운조루, 너무 더버서 아무도 가지 않아 나도 사진만 ㅎㅎㅎ

    오미마을 유래는 영조 52년(1776년)에 문화류씨 류이주(柳爾胄)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를 지르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으며, 그 전에는 오동이라 불렀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 오미마을의 오미정, 이곳이 지리산 둘레길 17구간 종점이자 18구간, 19구간 출발지이다.

▲ 버스를 기다리며 구례군 운조루 유물전시관에 들러 구경을 하였다.

    관람시간은 10:00~17:00(점심시간은 제외)이다 그런데 관리인이 잠시 화장실 갔는지 없어 느긋하게 ㅎㅎㅎ

    운조루 유물 전시관은 조선후기부터 300여 년간 구례 오미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문화류씨가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된 유물은 운조루에서 대대로 소장해 온 150여점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운조루는 조선후기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1726~1797)가 1776년(영조52)에 세운 99칸(현존 73칸)의 가옥으로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운조루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 당호(堂號)로써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둑을 두어 주위의 배고픈 사람이 쌀을 가져갈 수 있게하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