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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구곡산, 무이구곡, 구곡사지골 "2026. 4. 11." 본문

지리산

산청 구곡산, 무이구곡, 구곡사지골 "2026. 4. 11."

지리산 독사 2026. 4. 23. 22:13

▲ 구곡산 직전에 진달래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너무 잘 어울려서 한 컷 남겼네요

▲ 지리산 천왕봉 전망대, 구곡산 자화상

    지리산 중봉에서 황금능선 끝자락에 위치한 구곡산은 아홉개의 굽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에 서면 천왕봉이 정면에 버티고 있어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 구곡산에서 봉골로 하산 전 만난 멋진 전망대

    이곳에서도 구곡산에서 천왕봉까지 용트림하는 황금능선과 멀리 밤머리재, 웅석봉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명암(明庵) 정식(鄭拭)의 산청 무이구곡(武夷九曲)

 

명암(明庵) 정식(鄭拭, 1683∼1746)이 경남 산청군 구곡산에 설정한 무이구곡의 입지, 시어(詩語), 건립 정사(精舍), 경물 제명(題名) 그리고 바위글씨(刻字) 등의 구곡경영 사례를 문헌 및 현장조사를 통해 밝힘으로서 주자의 무이산 무이구곡 유거강도(幽居講道) 행적에 대한 모방 등 추존(推尊)과 조선적 변용(變容)이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졌는지를 살피고자 한 것으로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수홍교(1곡)-옥녀봉-농월담-낙화담-대은병-광풍뢰-제월대-고루암-와룡폭(9곡) 등으로 최종 확인된 명암의 무이구곡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오롯이 조선에 모사(模寫)하고 실천한 대표적 사례이다.

 

구곡 원림문화라는 큰 틀에서 명암의 무이구곡 경영은 주자 추존을 통한 도통계승(道統繼承) 의지로 충일하다. 구곡산의 또 다른 이름이 ‘무이(구곡)산’이고 구곡의 명칭이 ‘무이구곡’이며 구곡 경영의 거처가 4 - 5곡 사이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구곡 경영을 위한 정사의 당호(堂號) 또한 ‘무이정사’였다.

 

또한 구곡 명칭과 차운시(次韻詩)의 내용 또한 주자의 그것과 흡사함은 명암이 주자 무이구곡을 산청 구곡산에 속속들이 모방하고자 한 명백한 근거이다. 하물며 명암 이전에 설정된 구곡이 구곡산에 있었으며 그 중 확인된 4개 구곡명 모두가 주자의 무이구곡 그것과 일치됨을 볼 때, 주자 추존의 동조행위(同調行動)가 명암 이전 이미 구곡산에 도래(渡來)하였으며 이는 구곡산 무이구곡의 전통과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제6곡의 광풍호와 제7곡 제월대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을 분화한 명칭으로 주자 시의 차용(借用)은 주자의 행적을 추존하는 조선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고 이는 무이구곡의 조선적 변용이라 판단된다.

 

한편 명암의 구곡을 재차 모방한 하범운(河範運, 1792~1858)의 「덕산구곡(德山九曲)」5곡은 ‘대은병’에서 ‘난가암’으로 변용되면서 바위에 새긴 바위글씨(刻字)가 유전(遺傳)되고 있다.

 

요컨대 「덕산구곡시」 속에서는 주자에 대한 존모심(尊慕心)은 약화되는 반면 자당(自黨)의 상징적 인물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추존함으로써 당파적 결속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구곡산 무이구곡원림은 명암 사후 주자의 도통 계승공간에서 선현 추모공간으로 변용되었지만, 주자 무이구곡의 모방과 변용을 통해 조선 구곡원림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전형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꺼비님 블로그에서 옮겨옴》 

무이구곡 각자

    제1곡 - 수홍교, 제2곡 - 옥녀봉, 제3곡 - 농월담, 제4곡 - 낙화담, 제5곡 - 난가암, 제6곡 -광풍뢰, 제7곡 - 제월대, 제8곡 - 고루암, 제9곡 - 와룡폭

▲ 구곡산 무이구곡 발자취

 

◎ 지리산 천왕봉 전망대 구곡산, 무이구곡 아홉 각자를 찾는 역사탐방 

  언 제 : 2026. 4. 11(토). 08:50 산행 시작 ------ 11.43km, 7시간 30분 소요

  족 적 : 덕천서원 주차장 - 수홍교 - 옥녀봉 - 불지사 - 농월담낙화담 - 난가암 - 광풍뢰 - 제월대 - 고루암 - 와룡폭, 연화대 - 황금능선 - 헬기장 - 구곡산 - 봉골 - 경상대학학술원 - 동신마을회관 - 덕천서원 주차장

  아홉개의 각자가 있는 구곡사지골을 무이구곡이라고 한다. 우리팀원 중 한명이 추천하여 무이구곡을 찾았으나 전날 새벽까지 내린 비로 인해 제월대는 물에 잠겼고, 계곡 길은 수량이 많아 쪼매 힘들었다. 그러나 역사 탐방하듯 하나 하나 흔적을 찾으며 즐겼고 구곡산에서의 천왕봉 조망은 최고라 할 수 있었다 

▲ 산청 덕천서원

    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교육 기능을 수행하던 조선시대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산청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 ~ 1572)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5년(1602)에 중건되었고, 광해군 원년(1609) '덕천'이라는 이름과 토지, 노비를 국가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7년(1870)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0년대에 복원되었다.

서원의 정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을 중심으로 그 앞에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진덕재(進德齋), 수업재(修業齋)가 있고, 뒤편에 제례를 지내는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배치되어 있다. 경의당은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 '경'과 그것을 실천하는 '의'를 중요시하였던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경의당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당인 숭덕사에는 선생의 위폐가 모셔져 있는데 현재도 봄, 가을에 두 차례의 향례를 올리고 있으며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남명제(南冥祭)를 지내고 있다. 

▲ 시정문 앞에는 수령 435년 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은행나무에는 벚꽃나무가 더부살이를 하면서 꽃을 피우고 있다

▲ 정면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좌측은 수업재, 우측은 진덕재가 자리잡고 있다

▲ 진덕재 앞은 주인을 잃은 흰고무신이 두컬레가 세월에 따라 변한듯이 놓여져 있다

▲ 덕천서원 맞은편 시천천변에는 세심정 정자가 있고,

▲ 좌측에는 시문이 있다

       - 냇물에 목욕하며 -

    온몸에 쌓인 사십년간의 허물

    천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 버리네

    만약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 

▲ 덕천서원에서 시천천을 따라 약 200m정도 올라가면 이렇게 골목 안쪽 남의 집 마당 담밑에 제1곡 수홍교 각자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구곡사지골이였으리라 짐작해본다

▲ 수홍교 각자는 명암 선생의 막내아들 상화의 글씨이다

▲ 관천대는 요렇게 사진으로 남기고 패스한다

    아마 이곳이 수홍교 터로 짐작이 된다

▲ 서신마을회관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 감나무 밭을 지나 올라 좌측으로 집 뒤에 두개의 무덤을 만나면 그곳에서 좌측 작은 동산을 넘어가면 제2곡 옥녀봉을 만날 수 있다

▲ 옥녀봉 각자는 명암 선생의 막내아들 상화의 글씨다

    옥녀봉에서 구곡사지골을 따라 오르려고 하였으나 전날 새벽까지 내린 비로 인해 계곡 물이 많아 계곡을 패스하고 도로를 따라 오르기로 했다

▲ 불지사를 지난다

    입구에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때닫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무언가 전하는 이미자가 강하게 느껴진다

▲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구곡사 입구까지 왔다

    '寺'자 앞에 하늘을 날아가는 선녀가 보이나요

▲ 구곡사 입구에서 약간 아래에 제3곡 "농월담" 각자가 있다

▲ 금강산 아닌 무이구곡 탐방도 식후경이라 ㅎㅎㅎ

▲ 도솔암교 직전 우측 도로옆에 너른 이끼 가득한 반석을 만나는데 「명암정식, 무이구곡」각자 있는 곳이다

    이끼를 걷어내고 각자를 확인해본다

명암정식, 무이구곡 각자, 명암의 막내아들 상화의 글씨다.

▲ 도솔암교, 이곳에서 우찌우찌하여 철망을 넘어 수량이 많은 구곡사지골을 따라 각자를 찾으러 간다

▲ 도솔암교에서 조금만 오르면 바위 좌측 면에 낙화담 각자가 있다.

제4곡 낙화담 각자, 명암 선생의 가운데 아들 상문이 새긴 각자이다.

▲ 넓은 청돌바위에 새겨진 제5곡 난가암 각자,  암 선생의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이다.

난가암을 알현하고 전국에 도솔암이 너무 많은지라 도솔암이 어떤 절인지 궁금하여 올라갔다

    그러나 도솔암은 주인이 없었다. 그러나 작업자들이 보수를 하고 있었으므로 보수가 끝나면 절집 주인이 들어오지 싶다

주인이 없는 절마당이라도 금낭화 꽃은 손님 맞이를 하고 있었네요

제6곡 광풍뢰 각자, 명암 선생의 가운데 아들 상문의 글씨이다

    도솔암을 구경하고 광풍뢰 각자를 찾기가 철망으로 인해 힘들었다

    그러므로 5곡 난가암에서 도솔암을 패스하고 계곡을 따라 6곡 광풍뢰로 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제7곡 제월대 각자, 명암 선생 큰아들 상협의 글씨로, 물이 많아 각자가 물속에 잠겨 있다

    제월대 각자가 있는 곳은 도솔암에서 올라와  등산로가 나누어지는 곳에 위치한다 명암 선생 큰아들 상협의 글씨다.

돌로 물길을 막아 각자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ㅎㅎㅎ

제월대에 있는 구곡산 등산안내도

    우리는 좌측 와룡바위, 와룡폭으로 ~~~

제월대에서 약 10여분 오르면 만나는 등산로 좌측 큰 바위가 고루암이다

    제8곡 고루암 각자는 명암 성생의 큰아들 상협의 글씨이다

오늘 산행에 유일한 폭포 즉 제9곡 와룡폭 각자가 있는 곳이다.

    폭포가 지리산 유암폭포와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와롱폭 각자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연화대(蓮花臺) 방구

연화대에서 오찬을 즐기고 와룡폭을 구경하며 한 참을 즐겼네요

 ▲ 와룡폭의 연화대에서~~~

    연화대를 지나 오르면 무이정사터가 있다고 하였는데 산불로 인해 대나무가 다 소실되어 무이정사터를 찾지 못했다

▲ 홀아비꽃대 군락지도 만났다

▲ 산불 흔적이 있는 이곳 된비알을 오르면 황금능선이다

    2025. 3. 21. 발생한 산청 산불로 인해 그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음에도 산죽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니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이구 디라! 황금능선 도착이다

    능선길 1.2km만 가면 천왕봉 전망대 구곡산을 만날 수 있다 

헬기장을 지나고~~

이렇게 2025, 3. 21. 발생한 산청 산불의 흔적도 지나고~~~

무인산불감시초소도 지나고~~~

곱게 핀 진달래 뒤로 천왕봉을 구경하며~~~

▲지리산 천왕봉 전망대, 구곡산에 도착했다요

    구곡산에서 국수봉, 써리봉을 지나 천왕봉까지 용트림 하듯 이어지는 황금능선, 산죽으로 인해 고생한 추억이 생생하다.

구곡산에서 바라본 밤머리재와 우측으로 달뜨기능선을 지나는 지리 동부능선

덕천강과 시천천이 만나는 시천면 소재지, 우측 골이 구곡사지골이다

이곳에서 황금능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진행한다

황금능선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전망대, 조망이 끝내줍니다.

▲ 황금능선에서 봉골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면 만나는 멋진 전망대

    이곳에서 구곡산에서 천왕봉으로 향해 용트림하듯 달리는 황금능선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고, 깊고 깊은 장당골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달뜨기능선도 감상 할 수 있다

이제 봉골로 내려선다

    온통 산불의 흔적이 산재해 있지만 생명력이 질긴 산죽은 1년여만에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봉골, 처음에는 계곡 좌측으로 내려가다 다시 우측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런대로 계곡 길을 좋았다

봉골도 지리의 어느 골과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산죽터널, 가시덩쿨 터널이 길을 막아 고생을 했다

길 좋다 ㅎㅎㅎ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콘크리트 도로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덕천서원까지 원점회귀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