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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덕에 찾게된 완주 송광사와 전주 한옥마을(2014. 3. 29~30) 본문

해밀 여행

아들 덕에 찾게된 완주 송광사와 전주 한옥마을(2014. 3. 29~30)

지리산 독사 2014. 4. 5. 21:30

송광사 종루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철종 8년(1857)에 다시 세웠다 건물 평면이 십자인데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종루 처마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며, 종루 안에는 그보다 140년쯤 앞서 만든 범종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물고기형 나무조각과 북, 구름무늬 철판을 매달았다 이것들은 불당 앞에 있어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한다

불전사물은 보통 아침 저녁 예불 전에 올린다 북은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을,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올리는 것이다.

이 각각의 울림을 듣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지키는 수석

아들 때문에 완주 송광사와 전주 한옥마을을 탐방하게 되었다 아들이 군 근무지가 전주로 인해 발령받고 처음 면회를 간 것이다

울산에서 비오는 토요일 오후 출발, 경부고속도로 88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지는 4시간 가량의 운전으로 전주에 도착하니

비가 계속 오고 날도 어두워져 한옥마을을 잠시 구경하는데 만족했다

다음날 아들을 면회하여 한옥마을을 찾았으나 이번엔 주차전쟁으로 차량을 주차할 곳이 없어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풍남문과 경기전 등을 멀리서나마 구경하였다

아들이 조용한 곳으로 가고싶다 하여 천년고찰 송광사를 찾아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아들은 부대로 복귀하고 울산으로 또 4시간 가량의 운전을 하며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한 번 보실려요?

▲ 진안 마이산 휴계소에서 바라 본 마이산

▲  송광사에 도착하니 일주문 앞에 부처님오신날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완성되면 소원성취 발원기도의 터가 될 것이다

순천에는 조선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된 승보사찰로 유명한 송광사가 있다면 전북 완주에도 송광사가 있다

전북 완주 송광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에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세운 절이다

이후 중창과 폐사 중창을 거쳐 지금의 송광사로 이어지고 있다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자호란 때 전주사고(왕조실록)를 지키기 위해 승군 700명이 머무른 곳이라 한다

▲ 종남산 송광사 일주문

절 앞에 서면 일주문, 금강문, 청왕문, 대웅전까지 일자형으로 되어 있다

일주문은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조선 중엽에 세운 것이다, 현재의 위치로부터 3km 남쪽 나드리에 있던 것을

18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옮겼다가 194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절은 원래 '백련사'라 하였으며 800동의 당우와

600승려들이 살아 16방주가 있었다고 한다, 연꽃을 조각한 보조기둥을 세우고 용머리 등으로 장식한 처마가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 금강문

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인데 닫혀 있어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 2

▲ 3

▲ 천왕문

4천왕을 모신 곳인데 문을 닫아 놓아 들어가지 못하였다

▲ 음수대

▲ 금강문과 대웅전 중간지점에 자리잡고 앉은 포대화상

▲ 하나같이 웃는 모습이라 보기는 좋은데 금강문 쪽에서 바라보면 포대화상이 대웅전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송광사 대웅전

송광사 대웅전은 신라 말기에 보조스님이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 2층 법당이었는데

조선 철종 8년(1857)에 재봉스님이 1층 건물로 다시 세웠다

대웅전 천장에는 부처의 진리를 찬탄하며 부처에게 음성과 춤 공양을 올리는 11점의 비천상이 그려져 있으며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우측에 아미타여래불, 좌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송광사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불이 있다

각각의 부처가 삼세(전세·현세·내세)를 상징하는 이 삼세불은 모두 조선 인조 19년(1641)에 흙으로 빚었다

법당 안에 있는 좌불상으로는 국내서 가장 크며, 불상 각 부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불상은 석가여래의 화현이라 여겨지던 진묵(眞默)스님이 점안(點眼)한 것이라고 한다

불상 복장에서는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왔다

 

▲ 송광사 목조삼전패

대웅전 삼존불상 사이에 있는 이 나무패 세 개는 17세기에 만든 것으로 이 삼전패는 목패, 원패라고도 한다

뒷면에는 각각 "주상전하수만세, 왕비전하수제년, 세자전하수천추"라고 적혀 있는데 인조임금과 왕비,

그리고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안녕을 빌어드린 조각이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맞아 어지러운 민심과 피폐해진 재정을 회복하고자

최고 승병대장인 16도 총섭 벽암스님과 승병을 보내 송광사를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이 절을 호국원찰로 삼았다

연꽃과 구름 그리고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로 화려학 장식하였으며

특히 왕을 상징하는 중앙 나무패에 있는 구름과 용이 뒤섞인 그림은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 종루

종루에 있는 송광사 동종은 조선 숙종 12년(1716)에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7cm 밑 너비는 72cm이라 한다

▲  관음전

▲ 이것을 마지막으로 송광사 여행 끝

▲ 비가 내리는 전주 한옥마을이 주말인데도 한산하다

▲ 대리석으로 조각된 저 곳에 막걸리 잔 띄워 놓고 세월 타령하고 싶다 바쁜 일손 다 내려놓고......! 

▲ 어느 관광지에 가도 보게되는 물레방아, 아담하고 정감이 있어 좋았다

▲ 멋진 수석, 너무 좋아 욕심난다

▲ 참숯란이라고 한것 같은데 먹어 볼려다 참았다

 

 

 

 

▲ 우산쓰고 다니면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니 모양새가 이상한 하루였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구경은 그만하기로 하고 경기전과 풍남문은 다음날 아들 면회하여 같이 구경하기로 하였는데

다음날 다시 찾으니 주차전쟁으로 멀리서나마 눈요기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일요일이 되니 웬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그리고 한옥마을에서 1박을 하려고 하였으나 예약이 다되어 포기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