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백두대간 산행 (37)
승욱이 사는 세상
▲ 우정산그리뫼 경자년 새해 함백산 산행에 앞서 만항재에서 44명 만차의 기념으로 단체사진 한 장 남겨본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산동읍, 그리고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로 함백산에서 태백산으로 가는길목에 있다. 또한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인 운두령(1,089m)보다 높은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만항재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일제강점기부터 탄광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마을이 있다 만항재의 유래는 두문동에 살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곳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이라고 불리다가 후..
▲ 14:00 장터목대피소 도착 장터목이란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이 이곳에 올라와 물물교환을 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대피소 주변에서 텐트를 치거나 주변에 침낭을 이용 막영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국립공원에..
▲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대간 종주(남진) 기념촬영, 내가 촬영하다보니 내 얼굴이 없다 ▲ 지리산 천왕봉, 백두대간 종주 자화상 지리산의 유래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였으며 일명 방장산(方丈山)이라 일..
▲ 남덕유산, 뒤로 향적봉 조망 덕유산,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광려산(匡慮山), 또는 여산(廬山)으로 불렸으며, 이성계가 고려장군시절 이산에서 수도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렸으나 해를 입지 않아 덕이 넘치는 산으로 덕유..
▲ 여원재(女院峙, 해발 470m)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고개로 산줄기는 고남산과 수정봉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고려말(1,380년, 우왕 6년) 이성계가 황산전투에 임할 때 어느 노파가 꿈에 나타나 고남산 산신단에 올라 3일간 기도..
▲ 만복대(萬福臺) 만복대는 풍수지리적으로 사방에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젖무덤처럼 솟아오른 만복대는 광활한 억새 군락지로 가을 풍경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 성삼재(姓三峙) 성삼재의 유래는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
▲ 봉화산, 옛날 전란을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던 산이라 봉화산이라 했지 않나 싶다 ▲ 중재마을에서 중재(중치)까지 접속구간 오르기 위해 파이팅 넘치는 단체사진 남기고 갑니다 ▲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월경산, 정상석 없이 팻말과 시그널이 월경산임을 알리고 있다 ▲ 봉화..
▲ 동엽령에서 바라 본 중앙 무룡산, 우측 남덕유산, 멀리 좌측 지리산, 우측으로 반야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곳 지리산까지 가야 이번 대간길이 끝난다 ▲ 빼재(920m) ---수령(秀嶺), 신풍령, 상오정고개 라고도 한다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였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
▲ 북바위 전망대 멀리서 보면 위태롭게 떨어질듯 절벽에 붙어 있었는데 가까이 와보니 이렇게 올라서도 끄덕없을 정도로 크고 견고하다 ▲ 백두대간 육십령 육십령(734m)은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지금은 경남과 전북의 겅계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육십현(六十峴) 대동여지..
▲ 문장대(文藏臺) 유래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 빼재(920m) ---수령, 신풍령, 상오정고개 라고도 한다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였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