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겁외사와 성철 큰스님 생가 본문
성철(性徹) 스님
속명 : 이영주(李英柱)
생몰 : 1911년 2월 19일 ~ 1993년 11월 4일
경력 : 1981년 제6대 조계종 종정
1991년 제7대 조계종 종정 재임
불교교리 집대성한 한국불교계의 큰 산맥 성철스님은 독학으로 사물의 이치를 깨쳤고, 여름에는 삼베, 겨울에는 광목으로, 옷 한 벌에 바리때 하나만으로 지냈고, 그나마 한 벌 옷도 여든이 되도록 손수 기워입는 ‘無所有의 삶’을 실천했다. 특히 ‘성철불교’라는 독보적인 불교이론을 확립한 성철스님은 8년동안 눕지도 자지도 않는 長坐不臥(장좌불와) 수행을 했고, 그리고 성전암에 철망을 두르고 10년동안 칩거생활도 했다. 또한 안정사 천체굴에서 수행할 때에는 어느 누구든 3천배를 올리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았다. 또한 백일법문을 통해 선종의 핵심사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정립하여 불교의 근본진리가 禪과 敎를 통해 中道에 있음을 밝히고, 선종의 정통한 종지가 돈오돈수에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법랍 59년, 세수82세 성철 큰스님은 1912년 임자년 4월 10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216번지에서 합천 이씨 집안에 태어나 1936년 초겨울 스물여섯에 가야산 해인사 동산스님에게 出家, 1937년 정축년 3월에 동산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습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성철 큰 스님의 생가터에 건립된 겁외사(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에는 생가와 유물전시관이 조성되어 있다.
동상 형태의 사리탑 뒤편에 안채와 사랑채 포영당이 있는 생가이다.
대웅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과 함께 김호석 화백이 그린 성철 큰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사리탑 좌측에 있는 조형물
우측에 있는 염주 조형물로 고등학교 2학년 아들
동상 형태의 사리탑을 염주 조형물 원안에 넣어 촬영했다
생가터 안채 유품전시실로 스님이 마지막 머물렀던 해인사 백련암에 보관돼 있던,
의자, 책상, 가사, 장삼, 지팡이, 안경, 고무신, 육필원고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님이 24세때까지 부모와 7남매가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것으로 아마 사랑채에서 뛰어 놀지 않았을까
생가터의 포영당으로 내부에는 스님의 발자취가 물씬 풍기는 것이 전시되어 있다.
포영당 내부에 있는 스님 생전의 모습들
포영당 내부에 있는 스님의 승려증과 주민등록증
생가의 장독대는 잘 꾸며져 있지만 그 옛날 모습을 상상해 보니 좀 아닌듯 싶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법어로 남긴 큰 스님은
마음의 눈을 가리는 세가지 毒이 ‘욕심·화·어리석음’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버리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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