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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7. 문필봉(463m), 주지봉(490.7m) 본문

전 라 도 산행

2011. 11. 27. 문필봉(463m), 주지봉(490.7m)

지리산 독사 2011. 12. 18. 20:52

문필봉 정상부 넓은 바위 위에서  

 

왕인박사유적지→주지골→문필봉→주지봉→죽순봉(월대암)→책굴→양사재→왕인박사유적지

09:00 ∼ 13:40분 === 산행시간 4시간 40분 소요

문필봉(文筆峰)과 주지봉(朱芝峰)은 백제시대의 왕인박사와 연관이 있는 듯 하다

文筆은 글과 붓(쓰다) 즉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일'인데 이는 문필봉의 뽀쪽함이 붓으로 표현했거나 아니면 왕인박사와 연관이 있는 것같으며, 朱芝는 '붉을 주와 지초지'자를 쓰는데 芝는 '서조(瑞兆)로 보는 신초의 이름, 혹은 버섯의 이름'이고, 서조는 '길조, 경사스럽다'인데 이 또한 이해는 안되지만 왕인박사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왕인 박사는 백제 때 제 14대 근구수왕(서기 375 ~ 384년) 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탄생했다. 그는 8세 때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해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됐다. 오경박사는 역(易)/시(詩)/서(書)/예(禮)/춘추(春秋)등 경학(經學)에 통달한 전문적인 석학에 부여하는 칭호로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왕인의 학문적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또 하나의 배경은 어린 나이에 편모슬하에서 수업을 했다는 것. 9세때 부친이 괴질로 운명을 달리하고 가세가 기울어 힘든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더욱 의젓해지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학문수업에 정진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의 뛰어난 학문실력은 15세 때『논어』/『효경』/『주역』/『상서(尙書)』/『모시(毛詩)』에 능통했고 17세 때에는『예기(禮記)』,『춘추』,『좌씨전(左氏傳)』.『문선(文選)』등을 두루 섭렵했다고 전해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성기동국민관광지(聖基洞國民觀光地)

전남 영암군 군서면 東구림리 일대의 관광지로 1986년 6월 23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왕인박사유적지 등의 역사문화자원과 월출산국립공원 일대의 자연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왕인박사 유적지 왼편에 면적 163㎡ 규모로 조성되어 휴식공간과 편의시설을 제공 하고 있다. 왕인은 성기동 태생으로 405년(백제 아신왕1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 등을 전하고 일본 황실의 정치고문으로 활약하였다.

학문, 기술, 공예를 전수하여 아스가문화의 원조가 되었다.

관광지에는 왕인의 탄생지를 비롯하여 문산재, 양산재, 돌정고개, 상대포, 책굴, 유허비 등

왕인박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매년 4월이면 왕인 춘계대제 등 왕인문화축제와 벚꽃축제가 열린다.

 

 

전날 월출산  9시간 산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아침일찍 일어나 왕인박사 유적지로 이동 주지봉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이라 그런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뭔지 모르게 새로운 길을 간다는 생각에 설레고 한편으론 오늘을 끝으로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저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찌하리 가는길이 그길 즉 도전의 길인 것을...! 

자유를 찾아 떠나는 도전이야 말로 최고의 도전 아니겠는가?

 

▲ 왕인박사 유적지에서 바라 본 좌측 죽순봉(월대암)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다 유적지 끝지점에서 우측으로 가면 '주지봉' 이정표가 있다

▲ 출입금지 폿말과 같이 개구멍이 있는데 머리를 숙여 통과해야 한다 

▲ 주지골의 시그널..... 계속 계곡으로 이어진다.

▲ 문필봉과 주지봉 능선에 올라 바라 본 문필봉 옆의 기암

▲ 문필봉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 가야 할 주지봉

▲ 문필봉 정상이다.  저 바위 위에 물이 고여 있는 바위 구멍이 3개 있다는데....! 

▲ 문필봉 바위를 오르는 나의 산 친구, 내가 먼저 올라 한컷..이런 힘든 곳을 3개나 통과해야 한다 

▲ 두번째 힘든 곳, 베낭을 벗어두고 오르면 십게 뛸 수 있는데.....난 이곳에서 베낭을 벗었다

▲ 문필봉 정상....난 저 위는 서지 못하였지만 나의 산 친구는 최 정상에서 바위 구멍 3개를 봤다네 

▲ 저 로프를 타고 오버형 바위를 올라야 문필봉 최정상이다. 이곳에만 서도 다리가 후덜후덜 

▲ 이제 문필봉 증 암봉에서 하산 주지봉으로 가야한다

▲ 문필봉에서 내려와 조망이 너무 좋아 해를 등지고 섰다 

▲ 주지봉으로 가면서 바라 본 문필봉...정상부는 아찔하다

▲ 문필봉을 줌으로.....저 로프를 잡고 오버형 바위를 올라야 정상이다...그러나 짧은 다리는 사절 

▲ 주지봉 장상.....정상석은 없고 폿말만 있다

▲ 주지봉에서 바라 본 월출산

▲ 주지봉에서 바라 본 월출산 도갑사..천년고찰이라고 하지만 공사를 너무 많이 하여 고저넉한 멋이 없는것 같다 

▲ 월대암 직전에서 바라 본 문필봉...저길 오르다니....! 

 

▲ 자라 머리를 닮은 바위

▲ 월대암의 기암

▲ 중앙 로프를 타고 하늘문을 통과해도 되고 옆으로 우회를 해도 된다. 

▲ 내가 봐도 정말 멋진 친구다

▲ 내가 명하노니...하늘문으로

▲ 왕인석상(王仁石像)

월출산 주지봉 아래 왕인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대인(後代人)이 조각한 석상이다.

높이 257cm인 이석상은 도포(道袍) 차림으로 멀리 상대포를 바라보고 있다. 

▲ 책굴(冊窟)

왕인박사가 홀로 조용히 공부하였던 천연석굴로 길이 7m, 폭 2.5m이다. 

▲ 책굴 입구는 좁지만 안에 들어가면 상당히 넓다

 

▲ 왕인박사보다 머리가 좋았는지 10분만에 공부를 다하고 탈출하고 있다.

▲ 文山齋와 養士齋

문산재 왕인박사 수학지인 유교적(儒敎的) 칭호(稱號)로서 朱芝峰(文筆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경내는 약 200여평 되는데 석축태(石築台)가 있고, 앞에는 석탑태(石塔台) 주축(柱軸)돌이 발굴된

백제때의 호당(互當), 신단태(神檀台)등이 있으며, 조선조(朝鮮朝) 도기(陶器) 파편도 있고,

아래에는 성천(聖泉)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우물이 남아 있으며,

문산재에서 유생들이 수학하여 인재가 많이 속출된다는 소문이 전파되자

문인재사(文人才士)와 수학자듫이 각처에서 운집하여 군자 석학을 수없이 배출하였다.

또한 이곳에 양사재가 있는데 이른바 유생들이 수학하는 서원식재당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건물은 문산재 27평, 양사재 13평을 85년 7월 착공 86년 11월에 복원되었다.

그리고 문산재 뒷산 월태암 밑에는 왕인이 책을 보관해두고 사용했다는 책굴이 있으며

그 입구 쪽에는 왕인을 기리기 위하여 수학자들이 세운 완인의 석인상이 서 있다.

▲ 양사재

▲ 성천에서 나오는 물이라 그런지 물맛이 꿀맛이였다.

▲ 왕인박사 유적지 원점회귀

전라도에서의 3박 4일간의 일정을 주지봉 산행으로 마무리 했다 

이곳에서 산 친구의 애마를 타고 보성 녹차밭으로 이동 선물꾸러미를 산 후, 무사히 울산에 도착 한 것에 감사하고

내일부터 또 일상속으로 들어가 꿈을 펼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