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갈맷길-- 기장군청-대변항-해동용궁사-송정해수욕장-구덕포(2013. 5. 26) 본문

해외 및 섬 산행

갈맷길-- 기장군청-대변항-해동용궁사-송정해수욕장-구덕포(2013. 5. 26)

지리산 독사 2013. 6. 2. 23:53

 해동용궁사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은 곳에 있는 것과는 달리 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발 아래에서 철석대는 수상법당이라 할 수 있다

무한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현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용궁사가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 이다

동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동용궁사는 고려 1376년(우왕 2년)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 혜근대사가 창건하고 절 이름은 보문사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스님이 중창하였다.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  

2013. 5. 26(일). 09:30 ∼ 15:30분 ------ 6시간 소요

기장군청--죽성만(황학대)--월전마을--대변항--해광사--해동용궁사--시랑대--송정해수욕장--구덕포

부산 갈맷길중 대변해안길은 총 19.7km로 약 6시간 소요되는 곳이다. 

울산서 애마를 이용 기장군청 뒤편에 주차를 하고 뒤편 죽성만까지는 차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차도와 해변길을 반복하는

길은 약간의 위험성이 따르고 갈맷길 표시와 해파랑길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장군에서는 해파랑길로 표시하는 것 같다

모처럼 집사람과 같이 한 바다길 마지막 송정해수욕장에서 구덕포까지 가지 않으려고 하여 달래며 완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 애마를 기장군청에 주차하고 여서부터 출발이다. 구간이 기장역부터이지만 오면서 들리기로 하고

 ▲ 갈맷길과 해파랑길이라 표시가 다 붙어 있다. 그러나 갈맷길 표시만 따라가면 된다

 ▲ 죽성초등학교로 아담하고 조용한 시골 학교로 정감이 있다, 세종대왕 동상은 초등학교 어디가나 다 있는 것 같다

 ▲ 인동초 '인내'의 꽃이라고도 한다 오늘 하루 인동초 꽃향을 하루종일 맡고 걸은 날이다. 향이 절말 좋았다  

   ▲ 죽성만

 ▲ 황학대

고산 윤선도가 유배되어 6년간 보낸 곳이더 윤선도는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가사문학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황학대는 중국의 유명한 이태배그 도연명 등 많은 시객들이 찾아 노닐던 중국 양자강 하류에 있는 "황학류"의 경치를 비교하여 

옛날 신선이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고사를 떠올려 고산 윤선도가 이름 지은 곳이다

 ▲ 2

 ▲ 죽성만의 등대와 SBS 월화드라마 드림의 세트장

 ▲ 2

 ▲ 어사암

죽성마을의 매바위는 암햄어사 이도재가 다녀갔다하여 어사암이라고 이름도 바꾸고 "이도재 생사단"을 세워 오랫동안 축원 제사를

올렸는데 그 비석은 기장읍 동부리 기장비군 속에 지금껏 남아 있다

 ▲ 바다 풍경과 인동초 향기를 취하며 즐기는 여행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바닷가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 여서부터는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이다

 ▲ 대변항에 도착하니 멸치잡이 배가 막 들어와 우렁찬 구령소리와 함께 멸치를 털고 있었다.

 ▲ 2

▲ 기장 척화비

대변초등학교 내에 있는 척화비는 조선 말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세운비석이다.

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들에게 서양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해석하면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이 비는 한자 12자가 새겨져 있다. 당초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항만을 축조하면서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을

해방 후 1947년경 마을 청년들이 인양하여 지금의 위치에 옮겨 놓은 것이다.

▲ 대변항의 모습

▲ 2

▲ 대변항을 지나면 만나는 다리, 이 다리는 우측 섬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철조망이 쳐져 들어갈 수는 없다

▲ 요새처럼 생긴 들어걸 수 없는 섬, 우측은 각종 해산물을 만원부터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아 오늘은 패스다 

▲ 해광사

▲ 해광사 좌측에 있는 삼성각 우측에 있는 명부전

▲ 해광사 용왕전

▲ 2

▲ 해동용궁사

▲ 일출암

▲ 많은 인파가 찾는 곳이고, 데이트 장소로 딱인 해동용궁사다

▲ 교통안전기원탑과 우측 아래는 12띠를 상징하는 상

▲ 해동용궁사 뒤편을 지나면 절 담을 따라 시랑대로 가는 길이다

▲ 뒤편에서 바라 본 해동용궁사, 바다와 탑이 정말 멋지게 어우러진다 

▲ 저 멀리 걸어온 길을 돌탑사이로 바라보니 한발 두발 건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돌탑

 천리향

▲ 2

▲ 기장팔경 중 7경인 시랑대

시랑대는 기장군 기장은 시랑리 동암마을 남쪽 해변에 있는 바위로 된 대(坮)로 예로부터 기장 제일의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용녀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으로 원앙대라 불렀으나 조선 영조 시절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었던 권적이 이곳 절경에 매료되어

자신의 벼슬 이름인 '시랑'을 붙였다 이후 수많은 명사들이 시랑대에 들러 시를 남기기도 했다 시랑대 옆에는 홍문관 교리 손경현이

1895년 새겨놓은 학사암 글귀도 있고, 기우제와 풍어제를 빌던 제용단과 해룡의 발자취도 남아있다

시랑대의 슬픈전설

시랑대 아래 동굴에 용이 잡아 놓은 고기를 빼앗아 먹고 사는 젊은 장사가 살았는데 복수할 기회를 엿보던 용은 장사의 부인과 갓난아이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분노한 장사가 용과 다투다 둘 다 죽게되고 지금도 시랑대의 동굴에 파도가 치면 부인의 절규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있고

옛날 젊은 스님이 있었는데 마을에 가뭄이 찾아와 사람들이 스님에게 기우제를 지내달라고 승화였다. 기우제를 지낸 어느 날 밤

스님은 달빛에 어우러진 원앙대의 절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굴에서 선녀 같은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용왕의 딸 용녀였다

그후 스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늘 용녀를 찾았고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웠다, 용녀는 스님의 아들을 갖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 홍문관 교리 손경현의 학사암

▲ 2

▲ 시랑대에서 바라 본 절경 그런데 동굴은 갈 수 없다 

▲ 시랑대가 있는 바위로 뒤쪽이 해동용궁사이다

▲ 송정해수욕장으로 좌측 정자가 '송일정'이다

▲ 송정해수욕장의 일송정

▲ 일송정 솔숲에서 바라 본 송정해수욕장

▲ 구덕포방향에서 바라 본 송정해수욕장

▲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는 구덕포에서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다시 송정해수욕장으로 한참을 걸어 나가 시내버스를 타고 기장시장에서 내려 만물시장 구경을 한참하고

다시 기장군청까지 걸었다 결론적으로 처음 시작할 때 기장역을 빼먹은 것을 다시 다 걸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