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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숨은벽 능선, 성문종주 "2023. 10. 8." 본문

서울 경기 산행

북한산 숨은벽 능선, 성문종주 "2023. 10. 8."

지리산 독사 2023. 10. 15. 23:43

▲ 숨은벽능선 명물인 해골바위

 

 

▲ 숨은벽, 니가 보고 싶어 멀리 울산에서 왔다

    좌) 인수봉, 중앙) 숨은벽능선, 우측이 백운대다.

    인수봉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 아이를 업은 듯하다 하여 부아산(負亞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리운다.

특히 대포알을 바로 세워 놓은 듯한 약 2백여미터의 화강암 봉우리는 전문 산악인들의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인기가 많다.

 

 

▲ 백운대 자화상

    북한산 유래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787m)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볼 때 이 봉우리들이 마치 세 개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 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의 부아악이 삼각산을 말하는 것이다. 삼각산 봉우리는 쥐라기(1억 8천만 년 전~1억 3천5백만 년 전) 말에 형성된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형상을 달리하는 반구형 형태를 보이며,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도 이상에 달한다.

주봉인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공간이 있어 수백 명의 사람이 앉아 탁 트인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백운대 동쪽에 자리 잡은 인수봉은 뿔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뚯 솟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암벽등반 장소로 유명하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는 국망봉이라고도 불렸다. 만경대에는 무학대사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렀다고 한다. 거기에 한 석비가 있었는데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라고 적혀 있어서 길을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다고 한다.

 

 

▲ 만경대를 배경으로 오리바위 자화상

 

 

▲ 의상봉 아래 토끼바위

 

 

▲ 북한산, 숨은벽능선 - 백운대 - 의상봉능선 발자취

▶ 언 제: 2023. 10. 8(일). 05:34경 산행시작 ------ 9시간 11분 소요

▶ 족: 밤골매표소 - 숨은벽능선 - 대동샘 - 백운봉암문(위문) - 백운대 - 백운봉암문(위문) - 용암문 - 일출봉 - 반룡봉 - 동장대 - 시단봉 - 대동문 - 복덕봉 - 보국문 - 성덕봉 - 화룡봉 - 대성문 - 대남문 - 문수봉 - 문수봉 - 청수동암문 - 나한봉 - 부왕동암문 - 증취봉 - 용혈봉 - 용출봉 - 가사당암문 - 의상봉 - 토끼바위 - 도로 - 대서문(왕복)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약 14.73km

▶ 2년 전 숨은벽능선, 백운대, 영봉으로 산행을 한 적이 있으나 의상봉 능선은 처음 산행이다.

    울산 무거동에서 리무진 버스를 이용, 00:00경 출발, 21:35경 울산 도착하여 무탈하게 산행을 마무리 했다

 

 

              ▲ 북한산 등산안내도

                                       ▲ 북한산 12성문 안내도

 

 

▲ 사적 제162호 북한산성(北漢山城)

    북한산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1711년(숙종 37)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격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한양 외곽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산성이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길이는 7,620보(步), 즉 21리 60보이며, 지형에 따라 적절하게 축성방식을 달리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곽시설로는 군사 지휘소인 장대(將臺)를 세 곳(동장대, 남장대, 북장대)에 만들었고, 성문 6개소(북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대서문), 암문(暗門) 6개소, 수문 1개소를 두었다. 성을 쌓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문제로 삼았던 식수 문제는 99개소의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저수지도 26개나 만들고, 8개소의 창고를 두었다.

성 안에는 승군(僧軍)을 주군시키기 위한 사찰을 여러 곳에 두었는데, 승군 총섭이 머물던 중흥사는 규모가 136칸에 달했다. 1712년(숙종 38)에는 상원봉 아래에 130칸 규모의 행궁과 140칸에 이르는 군창(軍倉)을 지었다. 근래 훼손되었던 대서문, 대남문을 보수하였고,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 동장대 등은 다시 지었으며, 성곽과 여장 등도 보수 정비하였다.

 

 

▲ 버스가 예까지 올라올 수 없어 우리는 도로에서부터 걸어서 국사당이 있는 밤골공원지킴터에 도착했으며,

    백운대(숨은벽) 까지는 4.3km거리다

▼ 국사당에서 북한산둘레길을 따라가다 숨은벽 능선으로 올라도 되지만 밤골계곡으로 오르다 숨은벽능선으로 붙어도 된다

 

 

▲ 북한산은 야간산행 금지네요. 위반시 최대 50만원 ㅠㅠㅠ

 

 

▲ 이제 이곳만 오르면 해골바위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2년 전에 왔을때는 요런 계단이 없었던 것 같은데~~~

 

 

▲ 조 뒤쪽이 해골바위가 있는 곳으로 사방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 내려다 본 해골바위

 

 

▲ 숨은벽능선에서 바라본 상장봉능선, 뒤로 도봉산, 오봉능선이 우뚝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 좌 인수봉과 우 백운대 사이에 숨은벽이 하늘높이 솟았다

    가까이서 보는 것도 웅장하고 우람한 근육질이 좋지만 이곳에서 보는 것도 정말 멋있었다

 

 

▲ 소룡님과 올만에 함산, 즐거웠어예

 

 

▲ 넓은 암반 전망대에서 쉬면서 내려다본 해골바위

 

 

▲ 멀리 도봉산과 오봉능선

 

 

▲ 전망대에서 단체~~~

    어서 가입시더, 마이 놀았다 아인교 ㅎㅎㅎ

 

 

▲ 바나나바위

    우리 일행은 아닌데, 안 비켜주어 뒷모습으로 ㅎㅎㅎ

 

 

▲ 숨은벽이 점점 가까워지니 도봉산의 오봉능선 뒤로 사패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2년 전에도 푸르게 반겼는데 그자리 그대로 산객을 반기는 명품솔, 오래오래 푸르름을 잃지 않기를 바래본다

 

 

▲ 숨은벽을 가까이서 보니 더 웅장하다

 

 

▲ 숨은벽, 백운대, 장군봉 아래에 있는 대동샘에서 시원하게 한모금 하고 올랐다

 

 

▲ 대동샘에서 오르다 왼쪽 숨은벽을 올려다보면 새부리처럼 생긴 바위를 볼 수 있다

    새부리바위, 독수리머리바위 ㅎㅎㅎ 무슨바위라고 해야할지 ~~~

 

 

▲ 이곳이 호랑이굴이라고 하는데 굴은 보이지 않는다

 

 

▲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우측 백운대 방향으로 간다

 

 

▲ 백운대로 가면서 내려다 본 서울 강북구 우이동, 수유동 정도 되것다

 

 

▲ 백운대 오름길 방구 구멍 척박한 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는 풀한포기

    근디, 사진으로 보니 너무 작아 잘 안빈다 ㅎㅎㅎ

 

 

▲ 흰구름이 넘나드는 백운대

    태극기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참 좋다

 

 

▲ 백운대 3.1운동 암각문

    고양시 향토유적 제32호인  암각문은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새긴 기록문이다. 경천애인(경천애인)이란 네 글자와 함께 '독림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 1일 탑동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민세를 도창했다.' 라는 내용을 새겼다.

이 글을 새긴 시기는 3.1운동 이후로 추정되며, 그 목적은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영구히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각문을 새긴 정재용은 1886년 해주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로 1919년 2월 19일 해주에서 상경해 3.1운동의 물을 당겼던 장본이다.

 

 

▲ 인수봉에 암벽꾼들이 많이 붙어 있다

    뒤로는 도봉산, 오봉능선 뒤로 사패산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인수봉의 유래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 아이를 업은 듯하다 하여 부아산(負亞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리운다.

 

 

▲ 백운대에서 만경대를 배경으로~~~

 

 

▲ 오리바위에서 만경대를 배경으로 ~~~

 

 

▲ 백운봉암문(위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약 836m)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위문(衛門)으로 불려왔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ㄱ우너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백운봉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 용암문(龍岩門)

    용암문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조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 달리 은밀한 곳에 만들어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하였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용암문은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 내부 쪽을 홍예형으로 만들었다.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 용암문을 지나면서 뒤돌아본 모습으로, 만경대가 좌측에 인수봉이 우측으로 보인다.

 

 

▲ 대동문은 보수 공사중이네~~~

     대동문 아래에서 평평한 바위를 밥상으로 둥근 나무의자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 대동문에 있는 이정목

    보국문은 철판으로 막아 놓고 보수 공사중으로 인해 사진이 없다

 

 

▲ 대성문에서 잠시 쉬어 간다

    쉬고 있으니 후미에서 좀 천천히 가자며 투정을 한다 ㅎㅎㅎ 

 

 

▲ 대성문 지나 잠룡봉에서 대남문으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문수사를 품고 있는 문수봉 저까지 언제 올라가노 ㅎㅎㅎ

 

 

▲ 대남문 지나간다

 

 

▲ 문수봉에서 불광역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을 배경으로 ~~~

    비봉능선은 청수동암문에서 이어진다.

 

 

▲ 문수봉에서 당겨본 비봉능선의 기암

 

 

▲ 청수동암문

    의상봉까지는 2.7km이다

 

 

▲ 성랑지(城廊址)

    성랑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가 있었던 곳으로 북한산성에는 총 143개의 성랑이 있었다 한다.

 

 

▲ 남장대에서 내려다본 나한봉(좌측), 우측으로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가야할 능선이다.

 

 

▲ 나한봉으로 가면서 바라본 북한산 백운대

    좌측 백운대, 중앙 인수봉, 우측 만경대, 이곳에서 보니 정말 삼각산이다

 

 

▲ 나한봉 치성에서

 

 

▲ 부왕동암문으로 내려서는 곳은 데크공사가 한창이였다

 

 

▲ 부왕동암문,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우리는 암문 위로 통과 ~~~

 

 

▲ 암봉인 증취봉 아래 대따 큰 바구

    양쪽 구멍을 막으면 따뜻하게 한겨울 날 수 있으려나 ㅎㅎㅎ

 

 

▲ 증취봉, 정상 방구가 요상하게 생깃다

 

 

▲ 증취봉을 내려서면서 조망 좋은 곳에서 파노라마

    좌측은 용혈봉,우측은 백운대이다.

 

 

▲ 용혈봉에서 한 장 남기고~~~

 

 

▲ 인자 좌측 용출봉을 지나 우측 의상봉만 오르면 고생 끝이다 야후~~~

 

 

▲ 용출봉 아래에 있는 기암

 

 

▲ 기암에 올라가 자화상 남기고 용출봉으로 ~~~

 

 

▲ 용출봉 오를 때 기암과 주변 조망은 멋진데, 정상은 조망이 없다

 

 

▲ 우뚝 솟은 용출봉에서 급경사 내림길 달려 가사당암문을 지난다

 

 

▲ 멀리서보면 뽀족한 의상봉이지만 정상에 서면 조망이 없다

    의상봉에서 후미까지 모여 요기 좀 하고 다같이 하산 ~~~

 

 

▲ 의상봉에서 토끼바위로 내려가면서 뒤돌아본 의상봉능선

 

 

▲ 바빠도 할 건 다하고 가야지요

 

 

▲ 좌측 백운대에서 우측 의상봉 능선 파노라마

    북한산의 근육질 속살을 하루종일 즐겼다

 

 

▲ 의상봉 아래 토끼바위

 

 

▲ 이곳에서 도로를 만나 백운대 방향으로 대서문을 왕복했다

 

 

▲ 대서문 가는 길에 용암사

    담에 가기로 하고 기냥 패스한다ㅎㅎㅎ 근데 언제 다시 가보지 ~~~

 

 

▲ 대서문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 38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내에 마을이 있었을 당시엔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성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의 형식은 우진각지붕으로 문루의 일반적인 지붕 형태를 따르고 있다. 관영 건물이므로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를 강회로 마감하였다.

누각에 '북한산성 대서문 중수기'가 걸려 있어 중수 내역을 전해 준다. 문루의 배수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漏穴: 물이 흘러내리도록 구멍을 뚫은 돌)을 성문 앞뒤로 두었다. 성 밖을 바라보는 용은 입을 벌려 누혈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하였으나, 성문 안쪽에 있는 용은 입을 다물고 있어 장식용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문루 정면에는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한 장의 화강암으로 만든 점이 특징적이다. 북한산성의 대문 6곳 모두에는 이런 독특한 형식의 여장이 올려져 있다. 이 대서문을 통과하여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북한산성의 주요 간선도로였는데 이 대문 3곳을 맡아서 수비, 관리하였던 군부대는 어영청 유영이었다.

 

숨은벽능선으로 백운대를 오르는 바람에 북한산성 12성문 중 중성문, 시구문, 북문을 가지 못한 12성문 종주를 하였다. 같이 한 우정산그리뫼산악회로 인하여 울산에서 서울까지 먼거리를 안전하게 갔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