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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동북부 폐칠암자 "2024. 7. 27." 본문

지 리 산 산행

지리산 동북부 폐칠암자 "2024. 7. 27."

지리산 독사 2024. 8. 3. 16:22

▲ 안락문에서

    으리는 안락문을 지나 와불산까지 가려고 하였으나 비도 많이 오고 시간도 지채되어 그냥 암자터만 찾아 다니기로 하고 안락문에서 빽하여 신열암터를 찾으러 갔다

 

▲ 유슬이굴에서 한다리 들고 ㅎㅎㅎ

 

▲ 솔봉 지나 전망대에서

    비가 그치자 운무쇼에 펼쳐졌다. 그냥 갈 수 있으랴 ㅎㅎㅎ 한동안 무아지경에 뺘져 즐겼다

 

▲ 지리산 동북부 폐칠암자, 함양독바위(독녀암) 발자취 

▶ 언 제: 2024. 7. 27.(토) 08:10경 산행시작 ------ 7시간 소요

▶ 코: 세동마을회관 - 노장대 능선 - 환희대 - 상대굴 - 선열암터 - 함양독바위(독녀암) - 안락문 - 신열암터 - 고열암터 - 의론대 - 선녀굴 - 유슬이굴 - 솔봉 - 솔봉능선 - 문수골 - 문수사 - 세동마을회관 ... 10km

▶ 06:00경 승용차로 울산 신복로터리 출발, 07:50경 세동마을회관 도착

    이탈리아 돌로미티 10박 12일 트레킹을 하고 7월 23일 귀국하여 3일 쉬고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채 1박 2일로 지리산 페칠암자 산행과 지리산 둘레길 산행을 연계하여 산행을 했다. 

세동마을회관에 도착하였을 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다행히 비가 그쳐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시작 얼마지나지 않아 그전 내린 비로 인해 옷이 다 젖었고 또 습도가 높아 땀은 줄줄 시차적응도 되지 않은 터라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점심시간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땀인지 빗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옷이 젖은 상태로 폐칠암자 흔적을 찾아 다녔다 

 

▲ 세동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에 어르신 한 분이 휴대폰이 안된다며 들고 나오시길래 고쳐 주고 ㅎㅎㅎ

    다른 아주머니는 비도 왔고 숲이 우거져 길도 없을낀데, 장화도 안 신고 하시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셨다

 

▲ 마을 뒤로 오르면서 비그친 신선한 풍경에 눈은 즐거웠다

 

▲ 빗물 머금은 나리꽃도 담아보고```

 

▲ 이곳 정수장 같은 작은 건물 있는 곳에서 노장대 능선으로 올라간다 

 

▲ 새벽까지 내린 빗물로 바지는 젖었고 습도가 높아 땀은 줄줄 ㅎㅎㅎ

 

▲ "산" 니 오랜만일세 ㅎㅎㅎ

 

▲ 땀 흘리며 도착한 환희대

    비로 인해 바위가 미끄러워 혼자 올라가 추억 남겼다

 

▲ 환희대에서 바라본 솔봉능선

 

▲ 환희대의 바위틈은 벌써 가을이 ㅎㅎㅎ

 

▲ 얼매나 땀을 흘렸는지 ㅎㅎㅎ 넘 디다 ~~~

    쪼매만 올라가면 선열암터 갈림길이다

 

▲ 선열암터 전 상대굴, 숲이 우거져 찾기가 ㅎㅎㅎ

 

▲ 선열암터

    하늘향해 솟은 바위 아래가 선열암터로 절벽 아래 두 곳의 샘이 있었다

 

▲ 선열암 암자터의 깨진 기와장과 하늘 향해 솟은 암벽으로 보아 이곳도 범상치 않은 암자터 였음을 보여준다

 

▲ 선열암터 옆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빗물과 땀으로 옷을 다 젖어 있었으나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점심을 먹을 수 없어 간이 타프를 치고 점심을 해결했다

 

▲ 점심 후 도착한 독녀암(함양독바위)

    독녀암은 상대날등과 황새날등을 좌우로 거느린 음달골이 오죽 깊고 험했으면 "그곳에 가면 사흘 안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말까지 전해져 온다고 한다

 

▲ 비로 인해 미끄러워 독녀암은 올라가지 않았다

 

▲ 독녀암 옆 침니에서

 

▲ 안락문으로 들어간다

 

▲ 요렇게 나와서 인정 남기고 ㅎㅎㅎ

    비가 계속 오는 관계로 와불산으로 가지 않고 바로 신열암터로 가기로 하고 빽했다

 

안락문을 나와서 바라본 독녀암

 

▲ 신열암터

    커다란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은 넓은 공터에 주춧돌과 기와조각이 널려 있다

    샘터는 찾지 못하였으나 병풍 아래 넓은 터로 보아 명당임은 틀림이 없어 보였다

 

▲ 고열암터

    고열암에 자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중에서

    병든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 잠시 포단을 빌려 깔고 자는데

    소나무 파도가 달빛아래 들끓으니 / 그곳에 노니는 듯 착각케 하네

    뜬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고 / 한밤중엔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오직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 / 혹 산신령이 비록을 얻을는지

 

▲ 고열암터는 점필재 김종직 일행이 산에 들어 첫날밤을 지낸 곳이라 한다

 

▲ 고열암터의 흔적들

 

▲ 의론대 전 독녀암 조망처에서 와 내가 저마이 길었나 ㅎㅎㅎ

 

▲ 의론대

    예전에 절벽아래 석굴이 있었는데 그곳에 기거하든 노숙 우타가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3암자의 중들과 이 삼반석에서 대승, 소승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우쳤다고해서 이곳을 의론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의론대(議論) : 삼반석(三盤石)에 올라 지팡이에 기대 섰노라니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모두 다리 밑에 있었다 승려 해공(解空)이 말하기를 "절벽 아래에 석굴이 있는데 노숙(老宿) 우타(優陀)가 그곳에 거쳐하면서 일찍이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3암자의 중들과 함께 이 반석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이렇게 호칭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바위틈 일엽초가 비를 맞아 이끼와 조화를 이루며 멋진 포즈를 취하였다

 

▲ 선녀굴과 유슬이굴 갈림길로 먼저 선녀굴을 갔다가 돌아와 유슬이굴로 가기로 했다

 

▲ 전설이 깃든 선녀굴

    선녀굴은 예쁜 이름과는 달리 한국전쟁의 비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빨치산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최후의 3인 부대로 떠돌던 중 3인중의 한 사람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인 이은조가 사살된 현장이다. 1961년 12월 어느날 아침 토벌대의 공격으로 이은조가 사살되자 정순덕과 이홍희는 이은조의 시체를 선녀굴 석간수 바로 앞에 매장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 선녀굴 석간수, 깨끗하여 바로 먹을 수 있었다

 

▼ 아래 사진은 2019년 선녀굴 석간수 사진으로 페인트 글씨가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다 

▲ 유슬이굴을 찾아가는 길은 덩쿨로 인하여 상당히 힘들었다 ㅎㅎㅎ

    예전에 선열암터에서 왔을때는 쉽게 찾았는데 ~~~

 

▲ 유슬이굴

    다래넝쿨과 잡목들이 엉켜 있는 덤불 속에 헤집고 찾아간 삼각형 모양의 석굴이 유슬이굴이다.

    이곳은 유씨성을 가진 어느 사람의 기도터라서 유슬이굴이라고 했다는데 주변에 이끼 묻은 기와장과 항아리 파편들이 널려 있어 기도터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유슬이굴 앞 하트 바위에서 요렇게 인정 ㅎㅎㅎ

 

▲ 솔봉에 올랐는데 비는 그쳤으나 구름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물 한모금 하고 바로 솔봉능선으로 내려갔다

 

▲ 비가 그치자 이런 멋진 풍경을 보게되네요

    지리 주능도 일부가 살짝 보이고, 멀리 바래봉, 덕두봉 등 서북능선도 보이고, 정면으로 삼봉산도 보였다

    하루종일 구름과 안개 속에서 조망없이 보내다보니 그냥 가기 아쉬워 한참을 즐겼다  

 

▲ 솔봉능선을 계속 내려가면 세동마을을 만날 수 있으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문수사로 내려섰다

    옛길 찾기 주의지점이라 하겠다. 내려가다 우측으로 너무 꺾으면 안된다

 

▲ 문수사

    대웅전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많은 개들이 짖어 겁이나 들어가지 못하고 대웅전 앞까지만 갔다가 돌아나왔다

 

▲ 문수사 입구로 나오니 좌는 보현보살, 우는 문수보살이 있었다

    우측 계곡으로 내려와 문수사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 물수골의 기도도량 심영사

    내려가다 건물에서 사람이 나오길래 물어보니 가정집처럼 된 전체가 심영사라고 하였으며, 문수사에 대해 물으니 유기견들을 키우고 있다면서 요즘은 일반 대중들이 올라가는 것을 많이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 요 건물에서 좌측 노장대능선으로 올랐다가 문수골로 하산하였고 세동마을 회관으로 내려가 마적동 방향으로 가다가 계속에서 알탕으로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