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지리산 둘레길 4구간, 금계마을 - 동강마을 "2024. 6. 23." 본문
▲ 지리산 둘레길 3 ~ 4구간 안내도
▶ 언 제: 2024. 6. 23.(일) 09:10경 산행시작 ------ 5시간 50분 소요
▶ 어 디: 금계마을 - 의중마을 - 서암정사 - 벽송사 - 용유담 - 모전마을 - 세동(송전)마을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마을 - 엄천교 ... 14.99km
▶ 06:00경 신복로터리 출발하여 금계마을 도착 산행 출발시부터 하루종일 웃으면 떠들고 즐긴 지리산 둘레길 탐방이였다
▲ 금계마을 주차장에서 단체사진 한 장 남기고 출발합니다.
▲ 요가 5구간 출발지 임더, 좌측의탄교를 건너 의중마을로~~~
▲ 의탄교에서 바라본 엄천교 상류방향으로 지리산제1교에는 꽃장식이 멋지게 되어 있다
▲ 홍수·범람 시 출입이 통제되는 차단기를 넘어 의중마을로 올라간다
▲ 의중마을 당산을 지나간다
의중마을은 고려시대 의탄소라는 지방특산물 탄(숯)을 중앙에 공납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였다는 유래에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의중이라는 이름의 내역을 갖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키고 이어주는 600년 묵은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고, 마을 안에는 당산 느티나무 신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뒤 산 쪽으로는 서암과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 발길이 뜸해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로서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 지리산 둘래길 스템프 인정을 하는 이곳은 의중마을 당산쉼터로, 2008년 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생 느티나무가 있다
▲ 걷기좋은 숲길을 따라 서암정사로 올라간다
▲ 서암정사 입구에 있는 안내도
이곳이 좋아 오래전부터 가끔 들린 곳이라 그런지 친근감이 있어 부처님 전에 삼배를 하고 소원을 빌었다
▲우측으로 화강암에 사천왕상이 새겨진 곳의 좌우측 입석 앞뒤에 아래 사진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사천왕상이 새겨진 곳을 지나면 이곳 대방광문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서암정사는 지엄대사가 중창한 벽송사로부터 서쪽아래에 있다. 원웅스님이 지리산 산세를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자원과 조화롭게 자연 암반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를 그린 조각법당을 10여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 5월에 개화를 하는 황목련(후박나무), 6월인네 꽃은 언제 보여줄런지 ㅎㅎㅎ
▲ 서암정사 대웅전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
서암정사의 유래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민족의 비극이 유난히도 치열하고 깊었던 이곳 지리산(智異山), 1960년경 전화(전화)가 지나간 지 한참 뒤였지만 산간오지(山間奧地) 두메산골인 벽송사(碧松寺) 주변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傷痕)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대자연(大自然)의 섭리가 인연(因緣)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희비에 개의치 않나니, 한때 천지를 진동하던 총성과 온 산을 뒤덮었을 포연(砲煙)의 폭풍이 휩쓸었을 이곳에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산새가 지저귀고 봄이 오니 꽃이 핀다.
오늘날 서암정사(瑞庵精寺)가 있게 된 것도 역시 억겁(億劫)의 인연과 대자연이 빚어낸 조화의 한 그림자가 아닌가 한다.
문득 지난 일을 회상하지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 어느날 복잡한 도시인 부산을 뒤로하고 청산(靑山)에 파묻힐 양으로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수행처(修行處)를 찾아 정처없이 흰구름따라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여기 벽송사다.
인적도 드물어 한적한 산사(山寺) 벽송사, 때로는 감자를 심어 끼니를 때우고 몸소 흙더미를 치워가며 이어지는 수행생활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너무 힘이들고 갈등도 많이 생겨 여기를 떠나버릴까 하는 마음이 몇 번이나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비가 새는 법당에 탈금(脫金)이 다 되어 새까만 모습으로 초라하게 앉아 계신 부처님을 들여다보며 망설이기를 거듭하면서 그럭저럭 눌러앉아 "여기가 또한 인연지(因緣地)려니.." 여기고 폐허를 수습하다보니 어언 10여 성상(星霜)이 훌쩍 흘렀다.
구석구석 묵은 쑥대가 나부끼는 1970년대 초의 어느 포근한 봄날 오후,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조용히 경내를 거닐면서 한 발짝 닞혀져 가는 묵은 옛길을 따라 알 수 없는 무슨 기운에 이끌리듯 와서 멈춘 곳이 바로 오늘의 서암정사 터다.
석굴법당 조성(造成) 경위
이곳이 만년도량의 성지(聖地)임을 확신하고 산승(山僧)이 도량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중 사람이 일부러 깍아놓은 듯한 거암, 즉 지금의 석굴법당 전면(前面)에 다다른 순간 몸과 시선이 굳어진 듯 멈추었다
"여기로구나, 아! 좋구나....."
조용히 눈을 감고 부처님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상을 사앙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한없이 기도하면서 염원(念願)의 심층에서 떠오르는 어떤 영상(影像)을 느끼니 바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世界)로다.
전쟁의 참화(慘禍)로 이 주변 지리산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寃魂) 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남북으로 첨예한 대립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서는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대자비(大慈悲) 광명 안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理想社會)가 실현되기를 발원하면서 부처님을 조성하게 된다.
조성과정의 이야기들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준비된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면서 비로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30여년전 불사를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난관과 고초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장엄한 사찰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시주들의 정성어린 물심양면 공덕과 더불어 석공들의 공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덕회, 이종원, 이승재, 이금원, 이인호, 맹갑옥 석공은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한치의 흘림없이 조각을 완성했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버방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겉석을 치고 홍덕회 석공이 세조각(細彫刻)으로 마무리 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배송대는 이금원 석공이,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여러 석공 중에서 특히 홍덕희 석공은 서암정사에서 10년 이상 머물면서 석굴법당을 위시해 사자굴의 모든 조각을 마무리 했다. 마천면 추성리와 의탄리의 몇몇 인연이 있는 분들은 처음 터를 닦을 때부터 시작해 도량 조성과정의 크고 작은 일에 큰 힘을 보탰다 험한 장소에서 도량을 조성하다보니 뜻밖의 사고로 자칫 불사가 중단될뻔 한 적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불보살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20여년 전 쯤일까. 지금의 사천왕상 맞은 편에 있는 돌탑을 쌓을 때였다. 탑 쌓기를 끝낼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일꾼들을 태워 경운기를 재조한 짐차(일명 탈탈이)을 몰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다 브레이크가 고장나 버렸다
운전자를 포함해 일곱 명이 탄 짐차는 걷잡을 수 없이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짐차가 쌓고 있던 탑에 부딪쳐 탑을 무너뜨리고 멈춘 덕분에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점검해보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무너진 돌더미 속에서 오자락이 내다 보였다. 황급 결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무너진 돌더미를 치워내자 탑 쌓는 기술자가 모로 누워 기절한 채 돌 밑에 깔려 있었다. 호흡도 거의 끊어져 있었으나 한 참 뒤에야 돌아왔다.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한 결과 갈비뼈 3대만 부러지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이야기 하기를 이 사람은 사고가 나는 순간 비몽사몽간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것을 느낀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해 있을때도 같은 노인이 나타나 밀치는 바람에 병상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상처로 인하여 신체가 허약해지면 정신이 극도로 혼미해질 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이다.
미타굴은 서암정사 대웅전 중창불사를 위해서 지금은 그 자리에 대웅전이 들어섰다
▲ 석굴법당 극락전
법당 우측으로 올라가면 용왕단과 비로전, 산신각이 있다
▲ 석굴법당 극락전 내부
▲ 연못 뒤로 석굴법당이다
▲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 ㅎㅎㅎ
▲ 법종각 앞 화단에 용 한마리가 승천하고 앞에 삼장법사와 일행들이 걷고 있다. 어디가우 ㅎㅎㅎ
▲ 서암정사를 나와 벽송사로 콘크리트 도로를 따른다
▲ 벽송사
벽송사는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이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년) 벽송 지엄대사에 의해 중창하였으며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이 머물며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선교겸수한 대종장들을 109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경내에는 벽송사 3층석탑(보물 제474호)과 벽송선사진영, 목장승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 함양 벽송시 목장승으로 「왼쪽은 경내에 잡귀의 출입을 통제하는 금호장군, 오른쪽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대신」이라고 한다
▲ 벽송사 뒷편에 있는 수령 300년된 소나무, 2011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는 좌측으로 올라 위쪽 소나무와 삼층석탑을 구경하였다
▲ 삼층석탑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벽송사,지리의 깊은 골은 살짝이 보여주다가 만다
▲ 이곳의 소나무도 송진채취 흔적이 있다
▲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 벽송사를 좌측에서 올라 내려다보고 우측으로 내려갔다
▲ 벽송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따르는데 능선까지 조금 올라서야 된다
▲ 능선 도착, 이곳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
▲ 이곳에서 능선을 버리고 벅수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한다, 직진하면 와불산으로 이어진다
▲ 산수국
▲ 모전마을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불상, 그런데 아무 설명도 없이 용유대라고 해 놓았다
▲ 자귀나무꽃 - 밤이면 꽃과 잎이 합진다고 하여 금술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 용유교에서 바라본 용유담, 비가 온 뒤로 인해 흙탕물이라 조금 아쉬웠다
용유담 유래
옛날 용유담에 아홉마리 용과 마적도사가 삵소 있었다. 마적도사가 쇠도장을 찍어 나귀에게 보내면 나귀가 생필품을 싣고 와 용유담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다리를 놓아 나귀를 건너오게 했다. 어느날 장기 샘매경에 빠져 있던 마적도사는 용들이 싸우는 소리에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고 결국 나귀는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마적도사는 자신을 질책하여 장기판을던져버리고 용들을 쫓아버렸다. 그때 던진 장기판 조각들이 용유담에 있는바위들이라고 한다
모전마을과 세동마을 잇는 곳에 마적도사와 관련된 전설 탐방로가 있다
▲ 용유교에서 바라본 모전마을
▲ 용유교에 있는 마적도사 전설 탐방로
▼ 마적도사의 전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 모전마을
▲ 복주머니 처럼 생긴 복바위
▼ 복바위 아래쪽에는 복바위쉼터가 있다
▲ 세동(송전마을)마을
이 마을은 창호지를 만드는 닥나무가 많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으로 송대, 고양터, 모전, 세동의 네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빨치산의 주 근거지로도 유명하며 아직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송대마을에서 산길로 내려오다보면 100명이 앉아 쉴 수 있을 정도의 평평한 바위인 "세진대"와 마적도사의 전설에 따라 "마적송"이라 부르는 소나무가 있다
▲ 커피 무료, 누가 운영하는 걸까? 파라솔 아래에 커피와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 운서마을 쉼터가 있는 고개
이곳이 꽃봉산 산행 후 하산하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 앞에 보이는 마을이 살구꽃 피는 마을인 운서마을이다.
연하동에서 소나무 숲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운서쉼터가 나오고 쉼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이 운서마을이다. 운서마을은 살구나무가 많은 곳으로 봄이면 살구꽃이 마을을 덮는다.
▲ 구시락재
운서마을 지나 구시락재를 넘으면 발아래 보이는 마을이 동강마을이며,김종직의 유두류록으로 유명한 곳이다.
▲ 구시락재의 나리꽃
▲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화암(花巖)으로 기록된 동강마을 당산 쉼터
운서마을을 지나 구시락재를 넘으면 시야가 넓어지고 동강마을과 강 건너 동호마을이 보인다. 동강마을 오른쪽의 느티나무 숲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화암이며, 동호마을은 김종직 선생의 관영차밭 초성지와 엄천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 동강마을이 금계 - 동강구간과, 동강 - 수철구간의 분기점이다.
▲ 동강마을 도착하여 먼지털이로 옷을 털고 엄천교를 건너 지리산 둘레길 4구간을 마무리했다
동강마을은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개암터)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동강이라 하였다. 조선 고종때는 엄천면이라 하여 엄천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어 공무와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곳으로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에도 꽃봉산 등산로가 있다
▲ 엄천교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다리 아래에서 풍덩거리며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
'지 리 산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둘레길 5구간 동강마을-수철마을 "2024. 7. 28." (0) | 2024.08.03 |
---|---|
지리산 동북부 폐칠암자 "2024. 7. 27." (7) | 2024.08.03 |
지리산 깊은골 - 광덕사골 "2024. 6. 15." (2) | 2024.06.22 |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장항마을에서 금계마을 "2024. 5. 19." (0) | 2024.06.08 |
구례 화엄사, 밤재골, 형제봉 "2024. 5. 11" (0) | 2024.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