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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8. 지리산(도장골-촛대봉-거림골) 본문

지 리 산 산행

2011.09.18. 지리산(도장골-촛대봉-거림골)

지리산 독사 2011. 10. 1. 21:28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 헤메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다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되자

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못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러운 모습으로 에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 바위는 바로 연진의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족적 : 거림마을→길상암→이영희아지트→도장골→와룡폭포→촛대봉골→국골시루봉(장군봉)→청학굴(청학샘)→청학연못→세석평전→촛대봉→세석대피소→거림골→거림마을

시간 : 06:10분 산행시작 16:40분 하사완료........총 10시간30분(천상화원 구경으로 시간은 의미없음)

유래 :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 아름드리 거목들이 이 골짜기를 빼곡리 매우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는 군수용으로, 해방이후는 땔감으로, 한국전쟁때는 빨치산토벌로 인하여 훼손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복구되었다.

도장골은 촛대봉과 연하봉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골짜기가 모여 거림마을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고대어에서 〔산〕을 나타내는 말 중에〔달〕이 있으며〔달〕을 뿌리로 하는 말 중에 지역에 따라 모음이 변하면서〔달〕또는〔돋〕이 있다.

돋 + 안쪽 골 > 돋의 안골 > 도단골 > 도잔골 > 도장골  결국 도장골은 산의 안쪽에 있는 골이라는 보통명사에서 류래된 지명이다.

1951년 이전까지 빨치산들에게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도장골(옛 이름 도량골 : 수행처를 가리키는 불교용어)과 자빠진골(엎어진골)음 모두 거림골에서 가지를 벌린 골짜기이다.

후기 : 전날 산사나이 한명과 같이 지리산 도장골, 촛대봉 산행을 위하여 출발하여 거림골로 가기 전 약 20년만에 가보는 하동 쌍계사로 향했다. 가면서 악양면의 들판 부부송을 구경하고, 쌍계사에 도착 경건한 마음으로 새롭게 조성된 사리탑, 부처님에게 내일 무사산행을 기도하고 청학동 가는 길 하동 청암면에서 터널을 지나 산청으로 접어들었으나 거림 도착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상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하며 숙소를 잡고 오리불고기로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 비가 오면 비가 오지 않는 내륙지방으로 가서 산행을 하자며 소주 2병을 비웠다.

기도를 한 탓일까 잠을 청하기 전 비가 그쳤다. 나는 잠을 잤는데 일행은 꿈속을 헤매며 잠을 설쳤다고 한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장비를 챙기고 6시 10분경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길상암을 지나 도장골 깊이 들어가니 등로 찾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계곡을 세번 건너야 한다는데 우리는 한번 건너 계곡을 치고 올라 와룡폭포에 도착, 신선함을 뒤로 하고 시루봉에 오르니 안개가 우리를 반기고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다.

빨치산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청학굴을 보고 점심해결, 다시 옛날 인공으로 조성된 청학연못으로 가 연못에 비친 지리산에 빠져 있을때 단체로 온 산행객이 자기들의 땅인량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이것을 본 일행은 "비 등로이니 조용히 합시다"라고 한마디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아 우리가 피해 세석평전으로 향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안개속의 구절초, 산부초 등이 천상화원이였다. 화원에 폭빠져 있다 촛대봉을 지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영신봉과 창불대까지 가기로 했으나 포기하고 거림골로 하산, 비오는 안개속의 하산은 하루종이 신선이 된 기분이 들기에 충분하였다.

▲이영희부대 아지트

거림마을 길상암에서 700-800m 떨어진 도장골은 이영희 부대의 악양 보급투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빨치산 공비들은 하동 악양을 기습하여 많은 양의 식량과 물자를 강탈하여 이곳 도장골로 운반했다.

그러나 곧 토벌대가 악양으로 공격하다 빨치산들이 도장골로 쫓겨가고 되었으며, 도장골의 식량을 불태워졌다

이렇게 식량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던 빨치산의 악양보급 투쟁은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이곳은 빨치산 최후의 여공비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최초로 입산하여 공비활동을 했던 곳으로,

1951년 한해동안 거창, 합천까지 게릴라전 활동이 활발했던 이영희부대의 아지트였다.

  아지트 입구에는 돌담을 쌓아 만든 초소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초소의 위쪽 평지에도 100평 정도로 소단 형태의 돌탑이 5계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영희부대 아지트를 지나면 커다란 반석바위가 있다. 여기서 계류를 건너야 한다

▲드디어 와룡폭포가 저 멀리 보인다. 도장골에서 와룡폭포까지 계류를 3번 건너야 한다는데 우리는 한번으로 도착했다.

 

▲와룡폭포의 웅장함과 그 위용에 감탄사를 보내고  

 

▲촛대봉골로 접어들면 이런 와폭도 만난다

▲시루봉 직전 암봉에서 지나 온 도장골과 촛대봉 골을 뒤돌아본다. 

▲시루봉 직전 암봉을 오르는 조릿대 대장

▲시루봉 정상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한 컷..그러나 안개로 인해 일출봉과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시루봉 고사목 뒤로 연하봉이 살짝 보인다......벌써 단풍이 들려나

▲시루봉에서 고사목을 배경으로 안개 속의 촛대봉을 담아 본다

▲멀리 엉덩이를 닮은 반야봉과 지리산 주능이 보인다.

▲잠시 안개가 걷혔을 때 바라 본 촛대봉과 우측 연하봉

▲여가 청학굴임더....아래 사진은 청학굴 내에 있는 청학샘으로 여서 점심해결 

 

 

▲청학연못

청학(靑鶴)연못은 해발 1,500m의 연못으로 청학은 날개가 8개이고, 다리가 1개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로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청학연못의 하늘빛....벌써 단풍의 기운이 있다.

▲청학연못 뒤편 대슬랩

▲청학연못에 비친 대슬랩

 

▲세석평전의 산부초....천상화원에서 이런 산부초 꽃을 만나다니 정말 반가웠다.

 

▲지금부터 세석평전의 구절초, 산오이풀, 용담꽃 등 천상화원을 만납니다.

 

 

 

 

 

 

 

 

▲세석평전에서 바라 본 시루봉

▲촛대봉 정상

 

 

▲촛대봉 정상으로 그냥 갈 수 없어서....!

▲촛대봉의 의자바위에 앉아서

▲거림골 안개 속의 남자..멋지게 생겼다.

   

내일을 위한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이런 곳을 안내한 일행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