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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여행

2011.09.17. 쌍계사와 부부송

지리산 독사 2011. 10. 3. 13:32

다음 날 지리산 등산을 위하여 울산에서 토요일 점심 때 출발, 그냥 산행 출발지로 가기 전 내일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또 20년만에 가보는 쌍계사를 가기로 했다. 쌍계사로 가면서 악양의 부부송도 구경하고, 반나절의 시간을 정말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지금부터 구경 떠나볼까....?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남록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서기 723년(신라 성덕왕 22년)에 삼법(三法), 대비(大悲)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慧能) 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啓示) 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이다.

서기 830년 진감혜소(774-850)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 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선과 불교 음악인 범패를 가르치다 77세로 입적하셨다. 그 후 정강왕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셨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 혜수, 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 소요, 인계, 백암, 법훈, 용담, 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스님에 의해 복원 중수 주창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1점, 보물6종(20점), 지방문화재12점, 문화재자료5점, 천연기념물 2곳 등을 보유하고 있다.

▲ 경남 유형문화재 제86호인 쌍계사 일주문 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뜻으로 세운 문이다. 양쪽에 하나씩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한다 하여 '일주' 문이라 한다 그러나 쌍계사 일주문은 보조기둥을 세워 일주문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렸다. 이 문은 1641년(인조 19)에 벽암스님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에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경남 유형문화제 제127호인 쌍계사 금강문 은 일주문을 지나 절안으로 들어갈 때 두 번째로 통과하는 문이다. 여기눈 천왕문과 함께 사찰에 들어갈 때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금강역사가 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가 창건하였으며 1641년(인조 19)에 벽암스님에 의해 그리고 1979년에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126호인 쌍계사 천왕문 은 절 안으로 들어올 때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통과하는 세번 째 문으로 사천왕상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은 부처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다스린다. 수미산이 부처가 거처하는 이상의 세계이고, 사찰이 수미산을 이 땅에 재현한 것이라면 천왕문을 통과해했다는 것은 이미 부처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뜻이다.

1704년(숙종 30)에 백봉스님이 창건하였고, 1825년(순조 25)과 1978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쌍계사 구층석탑 은 고산 스님이 인도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때마침 발심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시주로 불기 2531(서기 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 3월 15일에 완공 건립하였다.

▲ 경남 문화재 자료 제74호인 팔영루 는 통일신라 840년에 진감선사가 세웠고, 조선시대 1641년과 1978년에 보수하였다. 이곳은 울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로서 훌륭한 음악과 많은 명인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불교음악인 범패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여기서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음률로 된 범패인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는 이름을 부쳤다고 전한다

 

▲ 보물 제500호, 쌍계사 대웅전 은 722년에 신라의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옥천사를 세운 것이 기원이다. 정강왕(886-887)이 두 계곡이 만나는 계곡의 지형을 보고 이름을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1632년에 벽암대사가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의 중심인 대웅전은 부처(여래)를 모신 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묘이다.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얹었고, 지붕과 기둥사이는 3단의 목조장식으로 받쳤는데 밖으로 드러난 목재들이 복잡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오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부의 천정은 모난 우물모양으로 꾸몄고, 부처의 하늘을 상징하는 닫집은 화려하게 장식되었다.....중략.... 대웅전은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와 미술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국보 제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로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말의 명승 진감선사 혜소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이다. 선사의 속성은 최시로 804년(애장왕 5년)에 당으로 들어가 신감대사 아래에서 계를 받았고, 각지를 만행한 뒤 830년(흥덕왕 5년) 신라로 돌아와 역대의 왕에게 숭앙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옥천사에서 입적하셨다.

선사의 큰 업적은 선과 차와 범패를 선양한 것이다. 헌강왕은 885년에 '진감선사대공탑비'라 추시하여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고, 정강왕은 쌍계사로 이름을 고쳤다. 이 비석은 887년(진성여왕 1년)에 건립되었다. 고운 최치원이 이 글을 짓고 썼는데 그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높이는 363cm, 비신의 높ㅇ는 213cm, 너비는 약 1m, 두께는 22.5cm이다.

▲ 경남 유형문화재 제28호 쌍계사 석등 은 대웅전 좌측에 있다.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서 중생을 깨우쳐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경남 문화재자료 제48호, 상계사 마애불 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이다. 큰 바위에 두터운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 감실(龕室)에 모셔진 부처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어깨까지 쳐진 귀는 자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 부처의 손은 법의로 덮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라기보다는 승려의 모습과 같은 마애불이다.

▲  경남 유형문화재 제123호인 쌍계사 명부전...이 명부전에는 지옥의 중생을 구한다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사후셰계에서 자신이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영혼이 가야할 길을 심판한다는 명부 10대 제왕이 모셔져 있다.

 

쌍계사 마애삼존불

▲ 경남 유형문화재 제124호 쌍계사 나한전

하동 악양의 부부 송

 

 

▲ 부부 송 인근 연못주변에 핀 코스모스

▲ 코스모스 뒤편으로 악양면 평사리의 성제봉과 신선봉이 늠름하다..저기도 가 봐야할낀데...! 

 

 

내일을 위한 오늘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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