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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5.-26. 지리산 태극종주 1구간-2 본문

지 리 산 산행

2012. 5. 25.-26. 지리산 태극종주 1구간-2

지리산 독사 2012. 6. 5. 21:22

노고단의 유래

노고단(길상봉)은 해9발 1,507m로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9노고-老姑)를 모시는 곳(단-壇)이라 하여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또한 이곳은 고산지대로 전망이 매우 좋고 시원해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과거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이곳 노고단 지역은 한 여름에도 기온이 서늘한 아고산(亞高山)지대로서

약 30만평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원추기 군락과 각종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다

 

태극종주 1구간 두번째 날

 정령치--만복대--작은고리봉--성삼재--노고단--성삼재로 하산 ===== 산행종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아침을 먹고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만복대로 출발했다

출발 전에 오늘은 무조건 장터목까지 가자는 결의를 다지며 그러나 전날 무리한 탓인지 오늘도 울산바위님이 힘들어 했다

내가 앞서가면서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성삼재에서 종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성삼재에 도착한 울산바위님이 계속 진행하자고 하여 일행은 노고단으로 향했으나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비야리님 부부와 의논, 울산바위님을 설득 성삼재로 내려 보내고, 비야리님 부부는 노고단이 처음이라하여 

나와 같이 노고단까지만 갔다 오기로 했다 그러나 하루가 즐거운 산행이였다는데는 이의가 없다  

  정령치에서 출발 전 우측이 반야봉, 좌측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이어진다 이때가 06:20경이다.

정령치(鄭嶺峙)의 유래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정령치(해발 1,172m)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또한 이곳은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도 하며

산정에는 옛날의 역사를 실증이라도 하듯 지금도 군데 군데 유적이 남아 있어 당시를 상기케 한다

산 밑을 내려다 보면 발 아래 보일 듯 말 듯한 굽어 보이는 절경이 장엄하기 그지없고

안개가 낀날에는 선경이 연상되며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낀다. 

정령치에에서 바라 본 지리산 주능선, 멀리 보이는 것이 천왕봉이다.  

  햇빛에 반사된 지리산 주능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저 멀리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 그 아래가 장터목인데 갈 수 있을런지....? 

좌측 꿑이 천왕봉 우측이 반야봉이다.  

  만복대 전 무명봉을 오름에 있어, 아침햇살에 비친 나의 모습이 정말 힘들어 보인다. 

  언제나 밝아 보이는 비야리님 부부

  우째 전체 사진이 달랑 한장 있는 울산바위님, 한장 있는 사진이 예술이다.

그러나 무릎 이상으로 갈수 있을 지 걱정이다. 

만복대.....이곳에 서니 벌써 7시 20분이다. 정령치에서 한시간 걸려 올랐다  

  정령치에서 내려서면서 촬영한 바위,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으며 다음에 올때 굴러 내려가고 없을까봐서 촬영 

  여가 묘봉치임다. 아직 성삼재까지 마이 남았다

그러나 기다려도 울산바위님은 오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만나 무릎에 에어 파스를 뿌려 주었다 

작은고리봉 정상에 도착하니 비야리님 부부는 먼저 성삼재로 가고 없었다

혼자 울산바위님을 기다리며 멀리 만복대를 배경으로 기다림을 달려봅니다.  

  성삼재 도착 이곳에서 울산바위님의 무릎으로 인해 산행을 포기하자고 하였으나 끝까지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노고단으로 향하는 중간지점에서 설득 울산바위님은 성삼재로 내려가고

나와 비야리님 부부만 노고단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 하기로 했으며, 태극종주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성삼재의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이 달궁이라 이름 지어져 불렀다 한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八郞峙),

서쪽능선에 정장군으로 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노고단 주능선 상에서 바라본 노고단 정상부의 돌탑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 본 좌측 반야봉과 멀리 천왕봉의 모습 가고접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노고단 정상부가 옛날에 위와 같았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네요

노고단에서 바라 본 섬진강과 저 멀리 화엄사,,,,,화엄사를 보니 엣날 화대종주 생각이 나네요

노고단에서 바라 본 섬진강은 총 길이가 212km에 달하며 멀리 전북 진안군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곡성군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 후, 지리산 남부의 협곡을 지나 경남, 전남의 도계를 이루면서 광양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섬진강은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을 비롯하여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자란다는 은어, 참게 등이 서식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을 뒤로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맑고 루픈 강물과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진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지리산의 십경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노고단 돌탑의 유래

노고단(老姑壇)은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과 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화랑들이 샇은 탑과 단은 1,00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초석으로 짐작되는 몇 개의 큰 돌 만이 남아 있었으나

1961년 7월 갱정유도(更定儒道, 1928년 창교된 민족종교) 72인이 다시 축조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조성되어 보존되고 있다

따라서 탑의 원형보존을 위하여 주변 돌들을 옮기는 행위 등을 유의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고단 돌탑 정상부로 노고할매 상

  노고단 정상에서 멀리 천왕봉을 배경으로 

  비야리님 부부도 가고접지만 배경으로 나마 위안을 삼으면서

노고단에서 지나온 서북능선을 배경으로 나의 머리부분이 만복대네요  

  노고단에서 서북능선을 바라보며

이것을 마지막으로 성삼재로 하산 울산바위님을 만나 종주를 포기한 아쉬움을 달래며 맥주 한잔하고 

원지에서 처음 이용하였던 택시를 성삼재로 불러 8만원에 단성면 원지까지 이동했다.

우리 일행은 울산으로 바로 오려니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고 비야리님 부부도 야영을 안해봤다고 하여

  다시 삼장면으로 이동, 삼겹살을 준비하여  지리산 대원사 계곡 방향의 야영장에 도착했다.

 

야영장에서의 두번째 밤 삼겹살에 쇠주를 한 잔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주된 꽃이 계획대로 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산한 것이였고, 그것 때문에 울산바위님이 많이 마안해 했다

우리는 이것도 추억이라며 다음에 한 번 더 도전하자고 했고, 그땐 멋지게 성공하자고 했다

도전이 있어 아름다운 두번째 밤을 텐트속 추억으로  보낸다

내일은 울산으로 바로 오기 싫어서 하동군의 청학동 삼성궁으로 향했다

도전이 있어 아름다운 내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