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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스러운 봉우리 월악산(1,097m) 영봉(12.10.28) 본문

충 청 도 산행

신령스러운 봉우리 월악산(1,097m) 영봉(12.10.28)

지리산 독사 2012. 11. 3. 19:57

 

월악산

2012. 10. 28. 08:40 ∼ 14:30분 ------ 홀로산행 점심포함 6시간 소요

보덕암 주차장--보덕암--하봉--중봉--영봉--헬기장--송계삼거리--마애불--덕주사--덕주골 토박이 가든

보덕암에서 양봉 4km, 영봉에서 덕주골펜션 6.3km 총 10.3km

월악산의 유래

충북 제천과 충주에 걸쳐있는 월악산은 삼국시대에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리웠고, 고려초기에는 '와락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려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중원의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되는 바람에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졌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높이 150m, 둘레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신령스러운 봉우리라 하여 영봉(靈峰) 또는 나라의 큰 스님이 나온다고 하여 국사봉(國師峯)이라 불리었으며

옛날 나라의 중요한 제사인 소사(小祀)를 지내던 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산중에서 정상을 영봉이라 부르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둘뿐이다. 영봉에서 보여지는 전경은 충주호와 남산, 계명산 등이 어우러져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맑은 날에는 치악산과 소백산도 조망할 수 있다.

 후기

충주에서 1박 2일 교육을 마치고, 왠지 바로 울산으로 내려가면 억울할 것 같아 차량을 운전 토요일날 단양 구인사로 향했다

그동안 언론과 사진으로만 통해서 보던 구인사를 처음 직접 눈속에 넣기 위해서다

주차장에서 맨 위쪽 대조사전까지 이어진, 단풍과 어우러진 구인사는 계곡 전체가 하나의 요새같았다.

말로 해서 뭐하리 등산하는 셈치고 한 번쯤 가보면 웅장함에 힘든 줄 모르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배를 마치고 충주에는 충주호, 제천에는 청풍호반이라고 하는 육지속의 바다를 끼고 도는 도로를 따라 송계계곡으로 향했다

덕주사 입구 덕주민박에 5만원을 주고 방을 구하고, 바로 앞 토박이가든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1병을 마셨는데

혼자서 먹는 소주 맛은 정말 쓰다는 것을 알았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술맛도 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덕주민박과 토박이가든을 자매가 운영한다는 것도 알았으며, 차량이 토박이가든 앞에 있는 관계로

보덕암까지 토박이가든의 사장님에게 부탁하여 이동하였다 비싸게 2만원주고.......!

그래도 어쩌나 차편이 안 좋아 그리하지 않으면 이동이 넘 불편한 것을 ........

방세 5만원, 차비 2만원, 밥 2끼 14,000원 도시락 5,000원 합 89,000원 들었다. 에구 예전엔 혼자서 잘 다녔는데 이제 돈이 왠수다

그러나 혼자서 6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차량을 운전 안전하게 귀울한데 대하여 오늘도 감사한다

▲ 덕주민박에서 1박 후, 산행 출발 전 송계리 덕주골 덕주펜션 앞에서 바라 본 월악산 

▲ 보덕암 입구에서 바라 본 월악산 하봉의 위용, 구름이 일렁이는 것으로 보아 신령스러운 산은 맞는것 같다

▲ 보덕암 대웅전, 자그마한 한적한 암자다

▲ 하봉으로 오르다 뒤돌아 본 보덕암 스님 1분과 호피무늬를 한 개 한마리가 암자를 지킨다

▲ 오늘 이런 계단을 많이 올라야 영봉까지 갈 수 있는데 처음 만난 나무계단, 단풍과 어우러져 한층 멋을 더한다

▲ 오늘 내가 명하노니 너는 '시루떡바위'라 하거라

▲ 보덕암 주차장에서 만난 천안에서 오신 두분, 영봉까지 같이 올랐으며, 이 시점이 하봉을 돌아가는 등로이다.

▲ 두번째 만난 계단, 이곳을 오르면 하봉을 지나고 중봉으로 이어진다 

▲ 중봉 오르는 첫 계단,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가 위태로아 보이나 이곳을 통과해야 조망이 트이고 중봉으로 이어진다

▲ 중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하봉과 충주호, 안개로 인해 시야가 흐리지만 육지속의 바다처럼 끝이 없는 곳이다.

▲ 영봉 아래 위치한 이정표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300m를 철계단으로 올라야 한다

▲ 일찍 산행을 하다보니 영봉에 산꾼이 많이 없어 좋았다, 내가 하산할 즈음에 많은 인파가 밀려왔다

▲ 영봉에서 혼자 놀기

▲ 중봉과 하봉으로 배경으로 하였는데 구름으로 인하여 조망이 영~~~~~~ 

▲ 영봉에서 바라 본 중봉과 그 뒤로 조그맣게 하봉이 꼬리를 내민다

▲ 월악산 영봉에서 한참을 카메라 들고 놀아본다...언제 또 올지 몰라서......

▲ 저 멀리 문경 주흘산 방향인데 아마 지리산 반야봉을 닮은 엉덩이 모양의 산이

백두대간에 걸쳐 있는 해발 962m인 포암산인 것 같고 그 앞이 만수봉(983m)이다

▲ 제천 금수산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구름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다, 육안으로는 희미하게 보였는데 말이다.

▲  신륵사 삼거리 가기전 만수봉과 만수봉 암릉이 너무 멋져 다시 쳐다본다, 언젠가 저곳도 가봐야 할 것인데 하고 말이다

▲ 오늘 산양을 구경하였음 금상첨화 였을 것인데 바위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 하산시 헬기장에서 바라 본 월악산 영봉...덕주사에서 오르면 눈앞에 보이는 영봉 바로 밑에서도 1.2km를 돌아서 가야한다

▲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했던가...영봉에 갔다 왔노라는 흔적을 남긴다

▲ 정면 첫 봉이 만수봉 그 앞이 덕주봉이다. 만수봉 뒤로 포암산 그 뒤로 백두대간인 하늘재로 이어진다

▲ 마애불 가기전 전망대에서 바라 본 모습으로, 좌로부터 영봉, 중봉, 하봉이다

▲ 2

▲ 만수봉 암릉길로 통제구간이다. 사면이 넘 멋지다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월악산 남쪽 기슭의 상덕주사 극락보전 동편의 큰 바위에 조각된 불상이다.

불상은 곧추선 모습의 입상으로 얼굴은 두드러지게 새겼지만 신체는 얕게 새기었다.

불상을 새긴 바위에는 목조전실을 만들기 위한 구멍이 남아 있으며,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 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머리가 크고 비만하게 표현된 양식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마애여래입상 위쪽에 위치한 탑

▲ 남근석(男根石)

덕주사가 자리한 월악산은 소백산과 속리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월악산 정상을 영봉이라 칭하는데

산정상을 영봉이라 칭하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두곳 뿐이다.

덕주사 뒷편 수산리 쪽에서 바라보면 누워 있는 여자의 얼굴 모습과 닮은 형태이다.

옛 사람들은 태양을 양(陽), 달을 음(陰)이라 했으며 사람과 비유해서는 양을 남자, 음을 여자라 했다.

이 산이 여자의 모습을 한 산이라 해서 월악산(月岳山)이라 칭한것 같다. 또한 월악산이 풍수학으로 볼 때 음기가 왕성한

산이기에 옛 선조들은 월악산의 음의 지기를 누르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남근석을 세운 것 같다

덕주사에 전해오는 남근석은 3개로써 크기는 길고 하나는 작은데 그 중 하나는 가운데가 부러진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한 예로 경북 안동을 안고도는 영남산맥중 한곳에는 뒷산이 여근형(女根形)이라 하여 왕성한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그 여근산과 대치되는 곳에 3개의 남근석을 세웠는데 이 풍수석주(風水石柱)들은 풍수상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덕주사의 남근석이 처음에는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웠으니 세월이 지나며 이들을 바라는 사람이나

또 소망과 행운을 기구하는 민속신앙이 되어왔음을 없어진 남근석 윗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을 이원화시키지 않았다. 인간의 생은 유한하고 우주의 모든 질서는 그 유한과 무한,

음과 양,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조상들은 이 모든것들 속에서 영원과 불변의 진리를 체득했으며

여기에서 탄생되어 진것이 제의(除儀)였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원을 추구했으며

그것이 민간에 전승되어 구원의 형태로 내려왔다. 그들은 괴기스런 표정이나 여기 덕주사에 있는 남근석 등이 바로 생과 삶

그리고 윤회의 진리를 체득한 우리조상의 지혜로움이 응축된 상징인 것이다.

▲ 덕주사

▲ 덕주사 약사여래입상

이 불상은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크고 대좌는 따로 만들었으며,

두발을 윗면에 조각하고 위로 몸체를 얹고 있다. 약사여래는 중생들을 모든 질병에서 구하고 마음의 어둠까지

씻어주는 부처로 대의왕불이라고 하며, 동방의 불국토인 정유리(淨琉璃)의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로 한 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이 불상은 원래 제천시 한수면 역리 덕상골의

전(傳) 정금사(淨金寺) 터라고 전해오던 곳에 위치하였는데 충주땜 건설로 1983년 4월 현위치로 옮겨 봉안되었다.

▲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지요

▲ 덕주사 대웅보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내일이 곧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