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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족이 떠난 여행 1일차, 무섬마을, 부석사(2017. 8. 5.) 본문

해밀 여행

두가족이 떠난 여행 1일차, 무섬마을, 부석사(2017. 8. 5.)

지리산 독사 2017. 8. 28. 00:15

2017. 8. 5, 6. 양일간 두 가족이 울산에서 출발하여 영주, 봉화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첫날은 영주에서 무섬마을, 부석사 등을 구경 시작하여 봉화로 이동 오전약수탕에서 1박을 하고

둘재날은 축서사, 청량사 구경 청량산 등산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중간에 밈속촌 갔은 곳도 다니며, 모처럼의 여행이 즐거웠고 또 사찰 3곳 참배에 108배까지

한여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추억여행이였다

첫날 여행은?

▲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무섬마을 이름의 유래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뒷편에서 만나 350˚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중국 섬계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인 영주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모양으로 한 바퀴 휘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반남 박씨) 선생께서 1666년(현종 7) 강 건너 '머름'에서 이 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 손자의 사위인 김대(선성 김씨) 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되어

지금까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 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로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亞島書塾)을 건립하여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인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이 있다

▲ 무섬마을 헌장

▲ 무섬마을 뚝에 핀 상사화

▲ 상사화와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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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여행한 두 가족

▲ 무섬마을 건너편에서 바라본 외나무 다리

▲ 외나무 다리를 건너가면 처음에는 물흐름 때문에 현기증 증세가 있으나 금세 안정이 된다

두 가족이 한자리에....!

▲ 아래쪽 외나무다리로 가다보면 만나는 소가 끌고 다니던 오래된 수레

▲ 무섬마을 하류로 내려가면 이렇게 외나무다리가 하나 더 있다

▲ 중요민속문화재는 기와집으로 된 고택도 있지만 이렇게 초가지붕도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은 거진 민박을 하고 있었다

▲ 요거이 화장실이다

↓다음은 영주 부석사 여행이다↓

▲ 부석사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내려다 본 부석사, 우측이 무량수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당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916년 해체 수리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 부석사 입구 주차장에 있는 인공폭포

30년만에 다시 찾아서 인지 옛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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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더위로 인해 폭포에는 무지개가 있다

▲ 부석사로 올가가는 은행나무길

▲ 태백산 부석사 이곳이 일주문 택인가?

▲ 천왕문

▲ 저곳을 통과하고 구중궁궐처럼 느껴지는 문을 또하나 통과해야 무량수전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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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남는게 사진이라 켔는데 .... 어째 사진이 몇장 없다

▲ 마지막 관문인 저 곳을 통과하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이다

▲ 국보 제17호인 석등,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이다.

나는 저곳 무량수전에서 한여름 무더위와의 싸움인 108배를 하였다

▲ 국보 제19호인 조사당으로 가면서 뒤돌아 부석사 삼층석탑과 우측 무량수전

▲ 조사당(국보 제19호)

부량수전에서 동북쪽으로 100m 가량 오르면 조사당이 있으며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의상대사는 절 창건 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화엄사상을 전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1918년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우왕 3년(1377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조사당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전설의 꽃 선비화(禪扉花, 골담초)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아 놓아 자란 것이라고 전한다

▲ 조사당 처마 밑에서 자라는 선비화(골담초)

▲ 응진전과 자인당

▲ 자인당

자인당에 있는 세분의 불상은 원래 부석사 동쪽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인데

세분의 석조여래좌상 중 양편에 모셔진 두 분의 비로자나불상이 보물 제220호이고

가운데 모셔진 불상은 2010년 2월 24일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다

이곳 부석사에서 108배를 마치고 민속촌 한곳 구경하고 숙박을 할 봉화 오전약수탕으로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