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주왕의 전설 서린 주왕산 "2020. 1. 12." 본문

경 상 도 산행

주왕의 전설 서린 주왕산 "2020. 1. 12."

지리산 독사 2020. 1. 19. 20:01

▲ 대전사의 보광전과 관음전

    대전사(大典寺)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 주왕산의 기암

 

▲ 주왕산은 1976년에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이름의 유래는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다른 설은 신라의 왕자 김주원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설이 있다. 산세가 웅장하고 깎아 세운 듯한 기암절벽이 마치 병풍을 두른 갓 같아서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때 주도가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후주천왕을 자칭하고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까지 쫓기어 왔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 주왕굴에서 신라장군 마장군 형제들에게 최후를 마쳤다고 전해온다.

 

▲ GPS 발자취

▶ 언   제 : 2020. 1. 12.(일) 10:00 ~ 14:35 .... 4시간 35분 소요

▶ 어   디 : 상의주차장 - 대전사 - 주왕산 - 칼등고개 갈림길 - 후리매기 갈림길 - 용연폭포 - 상의주차장 ... 약 11.16km

▶ 누구와 : 한우리 산악회 회원

▶ 주왕산 산행은 한우리산악회 산대장의 초대로 동행하게 되었다.

전날 울산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지리산 지석골, 왕시루봉」산행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피곤한 몸이지만 약속이라 배낭을 다시 꾸려 놓고 잠에 들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꾸려 놓은 배낭에 점심을 챙겨 넣고 집에서 나가니 몸은 천근만근이였다. 그래도 예전 100인 산악회 다닐 때 알게된 산대장 과의 약속이니 아니 갈 수 없었다. 

카페산방을 새로 만들어 제1회 산행하는 것이라는 한우리산악회 앞으로 멋진 산방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해본다.

 

▲ 상의 주차장에서 단체사진 한 장 남기고 일부는 주왕산 산행, 나머지는 계곡 트레킹으로 출발한다

 

▲ 상의주차장 주왕산국립공원안내도

 

▲ 상가를 지나 대전사로 가면서 바라본 기암

 

▲ 대전사 범종루

 

▲ 주왕산은 산 전체가 주왕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으로 대전사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 한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고찰이지만 그 모습은 유래나 지명도에 비해 아주 소박하게 절마당을 두고 건물이 원형으로 둘러 앉아 있다.

 

▲ 대전사 마당을 가로질러 나오면 "기암교와 주봉마루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주봉마루길을 따라 주왕산으로 오른다.

 

▲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만난 첫번째 전망대에서 바라본 기암

 

▲ 좌측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이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 두번째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측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

 

▲ 계곡으로 사이에 두고 우측이 급수대, 좌측으로 병풍바위 , 연화봉이다

 

▲ 두번째 전망대에서 자화상

 

▲ 능선에 올라서니 주봉은 0.8.km남았다

 

▲ 세번째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측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이 이제는 아래로 보인다

    산의 상징인 기암의 모습이 볼수록 기묘하고 병풍처럼 계곡주위를 두르고 있는 바위의 모습이 아름다워 자꾸 눈이 간다

 

▲ 계곡으로 사이에 두고 우측 급수대, 좌측으로 병풍바위, 연화봉도 아래에 있다

 

▲ 약 1시간 20여분 만에 오른 주왕산 주봉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 계곡을 따라 절경을 이룬 바위지대와는 달리 주봉은 조망도 없고 그냥 평범한 모습이다.

 

▲ 주봉에 오른 사람들만 단체사진 남기고 칼등고개 갈림길로 향했으며,

    칼등고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메봉 가는 길이지만 우리는 좌측 후리메기골로 진행했다  

 

▲ 후리메기골로 가는 중간지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르막 없는 내리막 계속 이어간다

 

▲ 칼등재골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깨끗하고 맑은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 후리메기 삼거리

    후리메기 지명 유래는 주왕의 군사가 훈련을 하였던 장소라 하여 훈련목으로 불리다 후리메기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목이란 표기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표기명인 갈림길이란 뜻의 기(岐)자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 좌측이 가메봉에서 내려오는 사창골, 우측이 칼등재골, 뒤쪽이 후리메기골이다

 

▲ 바람이 불어 작은 무명폭포에서도 물이 일렁인다

 

▲ 후리메기 입구인 주왕계곡에 도착하여 용연폭포로 향했다.

 

▲ 등산로에서 바라본 용연폭포

 

▲ 용연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1단 폭포

    용연폭포(龍淵瀑布)는 2단 폭포로 구성되며,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묘를 자랑한다. 이 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린다.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서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폭호나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 3개의 하식동굴

 

▲ 1단 폭포

 

▲ 2단 폭포

 

▲ 아래에서 바라본 용연폭포 모습으로 위쪽 1단은 햇빛으로 희미하나 2단은 시원하게 보여준다.

 

▲ 용추협곡

    용추폭포는 용꼬리에 해당하는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폭포 아래 돌개구멍은 각각 선녀탕, 구룡소라고 불린다. 이 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 용추협곡에 있는 용추폭포

 

▲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네요.

 

▲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지피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 급수대 주상절리

 

▲ 2

 

▲ 하산완료 후 식당가로 내려가면서 뒤돌아본 대전사

    전날 지리산 왕시루봉 산행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시간 버스로 이동한 주왕산 산행, 그래도 약속을 지킨 산행이라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