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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우령산 - 종남산』 "2022. 4. 6." 본문

경 상 도 산행

밀양, 『우령산 - 종남산』 "2022. 4. 6."

지리산 독사 2022. 4. 10. 18:11

▲ 우령산 자화상

 

 

▲ 종남산의 유래

    경상남도 밀양시의 부북면 전사포리에 있는 산으로, 초동면과 상남면에 걸쳐 있다. 우령산과 덕대산을 이어주고 있으며, 방동고개, 방동저수지가 있다. 일양시의 안산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남삼으로 뷸리다가 뒤에 종남산으로 개칭되었다. 「여지도서」에는 영현은 종남산으로 부르며, 부의 서남쪽 15리에 있으며 기우제단이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종남산의 개칭에는 몇 개의 설화가 전래된다. 그 대표적인 것은 옛날에 이 고을에 큰 해일이 발생하여 남산 꼭대기가 종지만큼 남아 있었다. 하여 종지산이라고도 했다는 일실이 있고, 다른 한 가지의 민담은 옛날에 종남이라는 의적이 이 산에 숨어 살았다고 하여 종남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당나라 수도의 남산이 종남이였기 때문에 서울의 남산도 종남이라 하였다. 이것을 모방하여 이 밀양의 남산도 종남산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봉우리 동편에는 고려시대 이래의 남산 봉수대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유적이 있으며 북쪽으로 추화산 봉수대에 응보하였다

 

 

▲ 종남산은 진달래로 유명한 산이다

    산을 오르면서 홀아비꽃대도 만나고 하산하면서는 노란제비꽃과 흰제비꽃을 많이 만났다

 

 

▲ 홀아비꽃대

 

 

▲ 흰제비꽃

 

 

▲ 우령산, 종남산 발자취

 

 언 제: 2022. 4. 6(수). 09:35 산행시작 ------ 6시간 소요

 누구와: 혼자

 족 적: 견고개(신생마을) - 우령산 - 방동고개 - 종남산 - 남산리 갈림길 - 헬기장 - 봉화재 - 고노실마을 ...  10.97km

▶ 집사람의 코로나19 양성판정으로 인해 하루 공가를 내었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PCR검사를 받은결과 나도 양성 판정을 받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지루한 일주일을 보낸 후 격리가 끝나는 날 검사하여 음성 확인을 한 후 혼자 종남산 진달래 산행을 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휴유증인지 몰라도 가슴이 답답하고 잎술이 마르면서 숨 쉼이 힘들어 물을 계속 마셨고, 또 장단지가 땡기면서 오르막을 오르기 너무 힘이 들었다. 종남산 1키로 정도를 남겨두고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종남산을 지나 덕대산을 거쳐 하산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너무 힘들어 종남산에서 고노실 마을로 하산했다.

 

 

"밀양의 견고개"라고 하는 '마흘리 신생마을'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좌측에 「밀양 의견상(義犬像)」이 있다

    동물이 우리 인간에게 의로움을 주었다는 이 언덕과 개에 얽힌 사연 한 토막을 기록하여 둡니다.

    지금부터 삼백여 년 전 조선 숙종 때 청렴한 세무공무원인 허초벽(許楚壁)이 이웃마을의 처가 잔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길옆 풀밭에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그 때 원일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번져오는 것을 보고 늘 동행하던 개가 몸에 물을 묻혀 불길 속을 오가며 뒹굴어 주인의 목숨을 구했다. 한참 후 허씨가 잠을 쌨을 때  개는 온 몸이 그을린 채 죽어 있었습니다.

허씨는 자기를 구하고 의롭게 죽은 개를 양지바른 쪽에 정성것 묻어주고 거기에 돌 하나를 세워 개의 충직함과 의로움을 기렸습니다. 그 뒤부터 이 고개를 개고개라 부르고 결혼 때 신랑이나 신부를 태운 말이나 가마가 이 고개를 넘나드는 것을 피했다고 전설이 전해온다

 

 

▲ 견고개에서 상생마을로 조금 가다 좌측 산길로 들어 산행을 시작한다

 

 

▲ 낙엽이 쌓인 푹신한 산길, 두릅이 하나씩 보이는 것을 보니 완연한 봄이다

 

 

▲ 등로를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니 홀아비꽃대가 지천이다.

 

 

▲ 희미하고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러운 길을 따라 오른다

    코로나19 여파인지 몰라도 가슴이 답답하고 잎술이 마르며 약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진달래를 구경하고, 좌우측으로 두릅이 있는지 보면서 최대한 천천이 오른다

 

 

▲ 요런 흔들리지 않는 흔들바위처럼 생긴 바위도 구경하고~~~

 

 

▲ 무덤처럼 볼록한 봉우리에서는 자화상도 남기며 천천히 오른다

 

 

▲ 요런거는 작아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패스, 아래것은 조금커서 배낭으로 ㅎㅎㅎ

 

 

▲ 봉우리 2~3개를 올랐을까? 반가운 544봉에 도착했다

    그러나 조망이 없어, 숨 한 번 돌리고 그냥 내려선다

 

 

▲ 우령산 자화상

    빨래판처럼 4~5개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니 우령산 도착했다

    추원재에서 출발하여 먼저 와 있는 분들에게 부탁하여 자화상 남기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 우령산에서 조금 진행하면 계단이 있는 전망대를 만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밀양 시내, 그러나 짙은 박무로 인해 아래 사진과 같은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은 보이지 않는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종남산, 그리고 진행해야 할 우측 덕대산이다

    종남산에서 대덕산을 지나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가슴이 답답하고, 잎술이 마르는 증상으로 덕대산을 패스했다 

 

 

▲ 방동고개(415m), 이곳부터 종남산까지는 계속 오름길이다.

▼ 방동고개에 있는 이정표, 종남산까지는 0.95km인데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쉼이 힘든 증상으로 인해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 가습이 답답하고 잎술이 말라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1리터 물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갈림길에서 우측 약수터로 진행했으나 덤불로 인해 찾아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나와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랐다

 

 

▲ 이제 방동고개에서 된삐알 다 올랐다

    진달래가 많이 핀 완만한 등로를 따라 종남산으로 오른다

 

 

▲ 저가 정상인데, 대학교에서 왔는지 단체로 와서 게임을 하고 있다

 

 

▲ 정상에서 이처럼 남산봉수대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다

    단체로 온 사람에게 부탁하여 인정샷하고 봉수대와 주변 진달래를 구경하며 답답한 가슴을 좀 진정시킨 후 덕대산은 포기하고 봉화재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잎술이 말라 얼마나 물을 많이 마셨는지 물도 떨어지고 ~~~~~~ 

 

 

▲ 종남산에서 밀양시내 쪽으로 바라본 영남알프스 산군

▼ 종남산에서 창녕군 쪽으로 바라본 산군 

 

▲ 밀양 남산 봉수대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남산리에 있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27호이다

 

 

▲ 종남산에서 바라본 덕대산

    몸 상태가 좋치 않아 담으로 기약한다

 

 

▲ 대신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달래와 한 참을 놀다가 헬기장으로 내려간다

 

 

▲ 우령산과 뒤쪽으로 오전에 올랐던 무명봉, 우측은 밀양 시내이다

 

 

▲ 종남산에서 내려다 본 밀양시내

    박무로 인해 영남알프스 산군은 희미하다

 

 

▲ 남산리 갈림길에 있는 종남산의 유래

    이곳 갈림길에서 조금만 오르면 헬기장이다.

 

 

▲ 헬기장

    이곳에서 봉화재로 가기 위해 상남보건지소 2.7km 방향으로 가는데, 오름길 없이 내리막만 있다

 

 

▲ 중간중간에 밀양아리랑 노래 또는 칼로리 소모량 등을 이정표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봉화재로 내려가는 등로에 노란제비꽃과 흰제비꽃이 지천이다. 

 

 

▲ 헬기장에서 1.2km거리에 있는 봉화재

    정면 산불조심 현수막 있는 곳으로 진행한다

 

 

▲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계속 걷다가 좌측으로 꺽이는 이곳에서 정면 산길로 가도 되고 좌측 도로를 따라가도 된다

    좌측 도로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좌측에 밀양의 3대 신비라는 간판이 있다

    그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산길로 접어 들어 계속 내려가면 고노실 마을이다.

 

 

▲ 벚꽃이 많이 피여있는 파크골프 연습장으로 내려서면 바로 고노실마을이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했다

    코로나 여파인지 몰라도 너무 힘든 산행이였다. 빨리 회복되어야할텐데~~~

 

 

▲ 고노실 마을에서 콜택시를 붙러 13,900원을 주고 견고개(신생마을)로 가서 차량을 회수하여 울산으로 출발했다

 

 

▲ 오늘 산행의 수확물이다

    두릅이 많은 곳을 지나갔지만 아직 작아 다 채취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위하여 남겨두고 왔다

    정말 힘든 산행, 코로나 격리로 인한 휴유증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