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지리산, 삼신봉-쇠통바위-불일폭포-쌍계사 "2023. 7. 2." 본문
▲ 삼신봉(三神峰, 1,284m)
경남 하동군 묵계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를 이룬다.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제석봉, 연하봉을 거쳐 촛대봉을 지나 남쪽으로 맥이 뻗어나가서 삼신봉을 이룬다. 삼신봉은 다시 좌우로 팔을 벌려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의 지맥을 이루었다. 외삼신봉 아래에는 일월대와 미륵암터가 있다.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의 품안에 묵계리가 입지하고 있다. 묵계리는 지리산의 청학동으로 잘 알려진 관광지이다. 삼신봉의 지맥 사이에 Y자 모양으로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농경지가 형성되고 작은 분지상에 나지막한 산억덕을 등지고 자연마을이 입지하였다
삼신봉의 남쪽 사면 골짜기에 삼신동(三神洞)이 있다. 「진양지」에 "삼신동은 천왕봉의 남쪽에 있다. 신흥사, 의신사. 영신가 세절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이 골을 거치기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요. 수각(수각) 가에 삼신동이라는 세글자의 석각이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하동의 관찬지리지나 군현지도에는 삼신봉에 대한 표기가 없다
- 네이버 지식백과 -
▲ 삼신봉에서 바라본 좌 노고단부터 우 천왕봉까지의 지리 주능
▲ 내삼신봉에서 바라본 지리 주능, 남부능선이 세석까지 선명하게 이어진다
▲ 송정굴
조선시대 학자였던 송정 하수일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이 굴로 때 피난했다고 알려져 붙여진 이름이다
▲ 쇠통바위 = 진짜 옛날 곳간 출입문에 채웠던 쇠통처럼 생겼다
그 옛날 자물쇠통과 닮았다하여 쇠통바위라 부르며 저 열쇠 구멍에 맞는 바위가 청학동 어디에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자물쇠바위를 이곳에 꽃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데.........
▲ 1,301봉에서 진행방향 좌측으로 비탐지역을 내려가면 만나는 하동 독바위
쑥밭재의 산청 독바위, 노장대의 함양 독바위와 함께 지리산 3대 독바위로 불리는 바위이다
▲ 불일폭포(佛日瀑布), = 청학이 승천하는 것이 보이나요
불일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재위 1204년~1211년)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이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으며 지리산 10경 중 하나이다.
▲ 불일폭포 영상 - 전날 비가 많이 와서 폭포수가 많아 청학이 멋지게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삼신봉, 상불재 등산지도
▲ 삼신봉, 쇠통바위, 상불재, 불일폭포 발자취
▶ 언 제: 2023. 7. 2(일). 09:10분 산행시작 ------ 7시간 20소요
▶ 누구: 우정산그리뫼 산악회 회원 40명
▶ 족 적: 청학동탐방지원센터 - 갓걸이재 - 삼신봉 - 내삼신봉 - 송정굴 - 쇠통바위 - 하동독바위 - 상불재 - 불일암, 불일폭포 - 불일평전(불일산방) - 마족대 - 환학대 - 쌍계사 - 주차장 ... 약 13.49km
▶ 05:00경 울산 신복관광버스정류장 출발, 22:00경 울산 도착
▲ 청학동탐방지원센터앞을 지나는데 전날 비가와서인지 계곡 물소리가 세차다
3년 전에는 청학동회관에 주차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왔다
▲ 이곳에서 우측 삼신봉까지는 2.4km이고 세석까지는 10km이다
좌측 다리를 건너 0.5km진행하면 도인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단체사진 한 장 남기고 삼신봉으로~~~
▲ 삼신산
망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우리 겨례의 가슴깊이 새겨 있는 삼신산~~~~~~~~
예전에는 삼신봉 정상 제단에서 청학동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냈는데 국립공원에서 못하게 하여 지금은 마을 뒷쪽에 제단을 만들어 제를 지낸다고 한다.
▲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삼신봉 0.7km남은 지점 샘터에 도착했다.
샘터는 비온 뒤라 그런지 깨끗하였고 땅에서 물이 솟아나 시원하게 한모금하고 갓걸이재로 올랐다
▲ 갓걸이재
좌측으로 0.4km만 오르면 삼신봉이고 뒤쪽으로 금줄처진 곳이 외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비탐구간이다.
그 옛날 갓을 걸어두었다고 해서 갓걸이재 ... 그런데 외삼신봉은 왜 비탐일까? 볼것도 없는데 억씨 궁금하네~~~
▲ 삼신봉
이곳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삼신봉을 올라, 지리 주능을 구경하고 돌아와 내삼신봉으로 간다.
▲ 제단이 마련되어 있는 삼신봉, 예전에는 청학동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건방진 자세라 산신께옵서 복을 주시지 않을랑가 ㅎㅎㅎ
▲ 세석까지 이어지는 남부능선과 지리주능을 배경으로 한 컷 남겨본다
요자세 찍으니, 너도나도 한 컷한다
▲ 오늘날씨 정말 좋다,
좌측 내삼신봉 우측으로 멀리 왕시리봉과 노고단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 파노라마 뷰
좌측 내삼신봉 뒤로는 노고단에서 청왕봉까지의 멋진 지리주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중앙 계곡은 단천골이다.
▲ 후미를 맡다보니 일행들은 다 출발하였다
아직 몇 명이 남아 인생샷 하고 있어 나도 한 컷 남겨보네....그런데 우리팀 아닌 산님도 있네 ㅎㅎㅎ
▲ 좌우측으로 큰 바위가 석문을 이루는곳, 이곳을 통과하면 내삼신봉이다
▲ 내삼신봉, 정상석엔 삼신산정(三神山頂)이라고 되어 있다
▲ 내삼신봉에서 건너 암봉에 있는 일행들, 저멀리 왕시리봉 능선이 구름과 어우러져 푸른바다처럼 아름답다
▲ 왕시리봉, 노고단, 반야봉이 구름에 가렸음에도 장쾌하게 뻗은 기운이 느껴진다
아래 의신마을 뒤쪽은 23년 3월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의신에서 대성주막을 지나 세석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화재로 인해 9. 30일까지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 나도 한 컷 ㅎㅎㅎ
▲ 내삼신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
능선 끝 좌측으로 하동독바위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내삼신봉에서 내려서 점심을 먹고 오후 산행을 이어갔다
▲ 산뀡의다리
▲ 노루오줌
▲ 일월비비추
▲ 일월비비추
▲ 송정굴, 작아보이지만 사람이 서서 지나갈 수 있는 굴이다.
▼ 굴 반대쪽에서 셀카로~~~
▲ 요 이정목이 있는 지점이 쇠통바위이다.
▲ 정면으로는 올라갈 수 없으며, 조금 진행하면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 요리로 올라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쇠통바위를 만날 수 있다
하늘문처럼 보이는 저곳도 쇠통바위 열쇠 구멍처럼 보인다
▲ 쇠통바위 뒤로 하동 독바위가 있는 봉우리 1301봉이다.
그 옛날 곳간을 채우던 자물쇠를 닮은 쇠통바위, 이곳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서둘러 먼저 간 일행을 따라갔다
▲ 삼신봉에서 3.2km지점으로 금줄 처진 지점을 넘어 조금 내려서면 하동독바위가 나온다
선두는 독바위를 패스하였지만 후미 3명은 금줄을 넘어 하동독바위를 구경하고 간다
▲ 하동독바위
무엇인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음~~~
▲ 가까이 가면 요런 모양이다.
하동독바위, 큰 바구 위에 요염하게 올라 앉아 하동쪽을 주시하고 있다.
▲ 하동독바위에서 내려다 본 청학동
▲ 상불재 도착
하동독바위를 들렀다가 내림길 신나게 달려 상불재 전에서 후미를 따라 잡았다
▲ 불일폭포(佛日瀑布), = 청학이 승천하는 것이 보이나요
불일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재위 1204년~1211년)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이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으며 지리산 10경 중 하나이다.
▲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하던 불일암, 옛날 암자가 요것이 맞것지요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불일암, 스님은 없고 새소리만 요란하였다.
▲ 대웅전도 깊은 산속 암자답게 정겹게 느껴졌다
▲ 청학동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그 옛날 이곳 작은 연못에는 피라미가 노닐었고, 허물어진 건물 앞 평상에서 어르신과 신선주 한병을 나누어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으니 ~~~~~ 인생무상이로다
불일평전은 인근의 불일암, 불일폭포와 함께 한국인의 이상향인 청학동으로 불리웠던 곳이다. 그만큼 햇빛이 잘 들고 물이 흐르며 토질이 좋아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현재의 아늑하고 평화스런 풍경은 1978년부터 이곳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故 변규화씨의 작품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벗삼아 즐길 수 있도록 나무를 가꾸고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소망탑이라는 돌탑을 쌓았다.
한때는 야영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탐방객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 예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소망탑,
바위에 한문으로 쓴 소망탑 글씨가 보이고, 탑에는 오랜세월을 견딘 흔적이 남아 있다.
▲ 마족대(馬足臺)
바위 위에 말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고 하여 마족대(馬足臺), 마적대(馬跡臺), 또는 마적암(馬跡巖)이라고도 불렀다. 용마(龍馬)의 발자국이 남은 흔적이라고도 하고 청학동에 살던 고운 최치원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자취라고도 전한다. 1744년 8월 지리산 청학동을 찾은 이계 황도익(1678-1753)은 냉연대(冷然臺)라고도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국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일화가 더해지기도 했다
▲ 환학대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는데, 이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바위라고 한다
▲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
이 탑은 고산화상께서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 그리고 전단나무 불상 일존을 모셨다고 한다
▲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유래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남록(南麓)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서기 723년(신라 성덕왕 22년)에 삼법(三法), 대비(大悲)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慧能)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啓示)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이다.
서기 830년 진감혜소(774~850)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 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곳에서 선(禪)과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치다 77세로 입적하셨다.
그 후 정강왕(定康王)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리셨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惠修)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戒), 법훈(法訓), 용담(龍潭)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1975년부터 고산(杲山)스님에 의해 복원, 중수 중창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점, 보물 9종,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3점, 기념물 1점, 문화재자료 5점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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