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2011.07.31 영축산(은수샘-금수샘) 본문

영 남 알프스

2011.07.31 영축산(은수샘-금수샘)

지리산 독사 2011. 9. 22. 23:28

족적 : 세심교 주차장--비로사--비로사 좌골--비로폭포--은수샘--좌청수골 갈림길--함박등--체이등--죽바우등--금수샘--백운암--극락암--세심교 (원점회귀)

시간 : 09:50분 산행시작 16:40분 하산완료........6시간 50분 소요

유래 : 우리나라 사찰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을 지니면서 불법을 전하고 있다.

화엄사상(華嚴思想)을 표방하는 화엄 사찰이 있는가 하면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미륵불(彌勒佛)의 세계를 그리는 정토(淨土)사찰이 있다. 또한 관음보살(觀音보菩薩)의 대자비(大慈悲)를 간구하는 관음도량이 있다

이러한 사찰의 성격은 통도사와 해인사 송광사의 삼보(三寶)사찰에서 잘 드러나 있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로,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로 이름이 나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요체인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가  각 사찰에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이 특별히 강조되어 표현된 것이라 한다

통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3대 사찰의 하나이며, 불보사찰로 불리는 것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라 한 이유는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하였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선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였고, 승려의 규범과 관장, 법식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한 데서 비롯된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득도케 하였으며, 이렇게 창건된 이 절은 후에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중심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이루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으며 현재 통도사 내 19암자가 있다고 한다

후기 :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로 하면 무엇하리 일단 봇짐싸고 떠나보면 다 아는 것을,

          누군가 부르지 않아도 가보면 부르는 사람이 있고, 만나보면 정겨움이 있는 것을,

          자! 떠나자 같은 길이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니 마음도 다를 것이다.

          엉컬어진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푸른 마음을 가득채워 내일의 밝은 태양을 기억하자!

 

 ▲ 비로폭포 상단에 올라 사진 촬영중인 조대장

  ▲ 산행시작 시점에 만나는 가지가 꼬인 수나무...... 무슨 한이 많은지...? 

  ▲ 비로암

비로암은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1592년(선조 11년) 덕장(德藏)스님이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 원명화상(圓明和尙)이 중수하였다.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며,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통도사 8경 가운데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다.

 

   ▲ 비로암 비로전

 

   ▲ 비로암 좌측으로 오르면 위와같은 페인트 표지석을 만나는데...비로폭포는 좌측길이다.

 

  ▲ 드디어 계곡에 숨어있다 살짝 모습을 드러낸 비로폭포가 눈앞에 있다.

  ▲ 비로폭포가 너무 웅장하여 한 앵글에 담을 수 없다. 위는 폭포 상단이다.

    ▲ 비로폭포 중단이다.

   ▲ 폭포 하단의 모습

   ▲ 폭포 좌측으로 오르면서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웅장한 비로폭포를 한컷에 담으려고 하였으나 끝내 담지 못했다

   ▲ 폭포 하단부가 완전히 보이지 않아 아쉽다.

   ▲ 비로폭포 위쪽에 올라 내려다 보았으나 너무 웅장함에 아래까지 보이지 않았다.

    ▲ 비로폭포 위쪽에 이런 와폭도 있다.  

    ▲ 오늘의 2차 목적지인 은수샘에 도착....맑은 샘은 "명경지수"였다. 

 

    ▲ 은수샘은 깨끗함 그 자체였고, 물맛도 일품이였다. 

 

    ▲ 은수샘 뒤편은 커다란 암벽이 버티고 있고, 그 좌측으로 로프가 있었다. 

  

 

    ▲ 은수샘 뒷산에 올라 안게속에서 한 포---즈

 

    ▲ 함박등에서 인정샷

    ▲ 함박등에서 바라 본 일명 부처바위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다.

    ▲ 등로에서 보면 이런 아슬아슬한 바위도 있다....평생 떨어지지 않게 빌어본다

 

    ▲ 채이등에서 가야 할 죽바우등을 바라보며,

    ▲ 죽바우등에서 지나 온 함박등과 채이등을 배경으로

 

    ▲ 지나 온 비경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으며,멀리 영남알프스의 비경을 구경하려고 하였으나 날씨가 허락하지 않았다.

 

    ▲ 죽바우등에서 조금 진행하면 위와 같은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 금수샘으로 향한다

    ▲ 오늘의 세번째 구경거리인 금수샘 그러나 샘에 낙엽이 있고, 깨끗하지가 않다 

 

 

    ▲ 금수샘을 지나 이런 바위 계곡도 통과해야 한다

   ▲ 백운암에 도착 물맛을 보는 조대장, 등로가 절 뒤쪽에 있다. 

   ▲ 백운암

백운암은 892년(시나 진성여왕 6년) 조일(朝日)스님께서 창건했으며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1810년(조선 순조 10년) 침허(沈虛)스님께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鏡峰)스님께서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통도사의 여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수도처로 유명했으며 특히 만공(滿空, 1871∼1946)스님게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여러 고승들의 일화가 전한다.

현존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 요사체 등이 있으나 유물은 특별한 것이 없다 저녁무렵의 아름다운 경치와 절의 북소리는 예로부터 통도팔경 중 하나로 유명하다 또 금수(金水)라는 약수가 잘 알려져 있다

 

   ▲ 백운암에서 하산시 만나는 돌탑

  ▲ 극락암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1344년(고려 충혜왕 복위 5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1758년(영조 34년)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중수하였다

한창때는 선원이 9동 104칸이나 됐다고 한다. 지금은 주법당인 극락암을 비롯, 선방인 호국선원(護國禪院) 앞에는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연수당(延壽堂), 수세전(壽世殿), 독성각(獨聖閣), 여시문과 함께 33조사(祖師)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三笑窟)과 함께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묘다. 암자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르질러 놓여있는 홍교(虹橋)와의 조화가 아릅답다

 ▲ 극락영지와 홍교

  

산정약수(山精藥水)는 령축산의 산 정기로된 약수이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먹어야 모든 병이 낫는다.

물에배울일,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을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을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은 물이다.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靈蹙山 深雲影冷  洛東江 闊水光靑"이라...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가 찹고, 낙동강 물이 넓으니 물빛이 푸르도다. 

▲ 백운암 여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