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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7가지 보물 산행 "2012. 2. 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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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7가지 보물 산행 "2012. 2. 5."

지리산 독사 2012. 2. 19. 00:09

 발자취

2012. 2. 5. 10:00분 ∼ 15:50분 ======점심포함 5시간 50분 소요

삼릉--상선암--금오봉--임도--삼층석탑--임도--이영재--칠불암--백운재--고위봉--이무기능선--용장1리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311호인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 4Km, 남북의 길이가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이 곳에는 수많은 불적이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신라건국 전설이 깃든 나정, 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쳐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 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그뿐아니라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되어 많은 사찰과 탑이 건립되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 곳은 122여 개소의 절터, 57여 개소의 석불, 64여기의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야외 박물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모처럼의 주말 쉬는 날로 다리가 건질거려 개나리 봇짐 싸고 향한 곳이 울산에서 가까운 경주 남산의 7가지 보물 여행이였다.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갔던 곳이지만 '불상이 많구나'하는 생각만 하였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번 경주 남산 7가지 보물을 찾는 산행은 경주를 새롭게 보게된 산행이였다.

 

▲ 삼릉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사적 제219호인 배리 삼릉이다 이 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한다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산행시작 처음 만나는 손과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이다.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도 한다. 이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는 곳이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한다 머리와 손이 파손된 이 불상의 가사끈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

    경북 유형문화재 제19호인 이 불상은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으며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 새김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머리 위에는 삼면보관(寶冠)을 썼는데,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입술에는 붉은색이 아직 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 위에 서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각각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은 정병(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손가락을 꼬부려 밖으로 향하고 있다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

    드디어 1박 2일 프로에 나온 남산의 첫번째 보물인 경북 유형문화재 제21호인 선각육존불이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頭光)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부 둔이 서 있다.

보통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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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座像)

    남산의 두번째 보물인 경북 유형문화재 제159호인 선각여래좌상으로. 이 불상은 높이 10m 가량 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위쪽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다.

얼굴부분은 돋을새김을 하고 몸은 얕은 돋을새김인데 나머지는 선으로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큼지막하고 넓적하게 표현하고 민머리 위에 상투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와 구분이 없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으며 양손의 손목까지 덮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여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바위 속에서 얼굴만 내민 듯한 점이 특이하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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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삼릉계석불좌상( 慶州 三陵溪石佛座像)

    남산의 세번째 보물인 보물 제666호인 삼릉계석불좌상이다.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이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상호(相好)는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뺨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편당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는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이 흐르고 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火焰紋)과 당초문(唐草紋) 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화좌(蓮花座)는 상대(上臺)에 앙련(仰蓮)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中臺)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을 두었으나 하대(下臺)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고아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얼굴과 광배 등이 크게 파손된 상태였으나 2007~2008년 경주시의 의뢰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였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뒤쪽에 그리 깊지 않은 굴이 있다.

    무속인들의 기도터로 변한듯 양초 탄 흔적 등이 그대로 있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 磨崖釋迦如來座像)

    남산의 네번째 보물인 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金鰲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았는데 깎아내다가 그만둔 듯 거칠다. 높이 7m로 냉골(三陵溪)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 남산의 북봉인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있다.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으며,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결가부좌)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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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그래도 정상에선 인정샷은 하고 가야제

 

▲ 용장사곡 삼층석탑에서 바라 본 고위봉

    이 아래 계곡이 용장골(茸長谷)이다.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며 용장사지 등 18개소의 절터와 7기의 석탑 그리고 삼륜대좌불 등 5구의 불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400m 아래로 내려가면 용장사터가 있는데 용장사는 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이였다.

용장사터 동쪽 높은 바위 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삼층석탑 아래에는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雪岑)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대현스님이 삼륜대좌불을 돌면 부처님도 따라 머리를 돌렸다고 하며, 그 뒤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지금도 따듯한 미소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

    남산의 다섯번째 보물인 보물 제186호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용장사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식 3층으로 쌓았는데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고,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층급받침이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m 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인다

바위 위에 세운 석탑으로서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茸長寺谷 石造如來座像)

    이 불상은 보물 제187호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다.

용장사터에 있는 미륵장육상(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되는 석불 좌상이다.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머리 부분은 없어졌다.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목에는 3줄의 뚜렷한 삼도(三道)가 있고 어깨에 넓지 않고 다소 좁은 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지어진 가사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특이한 둥근 형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준다

제작시기는 조각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불상이 보물임에도 1박 2일 프로그램에 소개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일본인에 의해 복원이 되어서 일까.......?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茸長寺址 磨崖如來座像)

    1박2일 프로에 소개되지 않은 경주 남산의 보물인 보물 제913호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아래에 위치하고 있고, 마애불 바로 앞에는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인 삼륜대좌불(삼륜대좌불)이 있다. 자연암벽에 조각된 이 불상은 머리둘레의 두광과 몸 둘레의 신광은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어깨 바같부분에 글씨가 있는데 "태평 2년 8월(태평이년팔월)"에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내용인데 마멸이 심하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이제 이곳에서 다시 내려온 길을 올라 임도에서 이영재를 지나 칠불암으로 가야한다

 

▲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1박 2일 프로에 나온 경주 남산 여섯번째 보물인 보물 제199호인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다.

이 불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절벽 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 보살상(菩薩像)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臺座)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이다

발은 연꽃 위에 있으며 이처럼 유희좌(遊戱坐)를 표현하였음은 드문 예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높이는 1.4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유희좌 : 결가부좌의 자세에서 한쪽다리를 풀어 대좌 밑으로 내린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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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慶州 南山 七佛庵 磨崖佛像群)

    1박 2일 프로에 나온 일곱번째 보물인 국보 제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가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四方佛)로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긑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니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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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고위봉 이제 이무기능선으로 하산해야 한다 

 

▲ 하산해야 할 이무기능선-- 중간 중간 로프도 있고 암릉길이라 지루하지 않게 하산 할 수 있다.

 

▲ 하산하면서 돌아 본 고위봉과 이무기능선 중앙 바위길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 이무기능선 마지막 지점에 이러 굴이 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

    아마도 인근 천우사가 아니면 무당분들의 소행인듯 싶다 술병도 그대로 있고, 양초를 태운 흔적 불을 놓은 흔적 등 ---이러지 말았으면 한다 

 

1박 2일 프로를 보고 나선 보물 찾는 산행,  늦게 나마 불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멋진 하루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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