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백두대간 32구간, 성삼재 - 만복대 - 여원재(2016. 7. 9) 본문
▲ 만복대(萬福臺)
만복대는 풍수지리적으로 사방에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대한 젖무덤처럼 솟아오른 만복대는 광활한 억새 군락지로 가을 풍경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 성삼재(姓三峙)
성삼재의 유래는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여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 불렀다 한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하여 팔랑재,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정령재,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다 하여 황령재,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를 하였다 하여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고리봉은 섬진강에서 올라온 소금배를 묶어 놓았던 고리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 만복대에서 만복을 받기 위해 자화상을 남기는 조릿대와 나
▲ 정령치는 옛날 마한시대에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지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지리산 주 능선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큰고리봉, 여기서 좌측으로 꺽어 고기삼거리로 대간길이 이어지고 직진하면 세걸산, 바래봉으로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 고기삼거리에서 바라 본 노치마을과 우측 수정봉
▲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우물 청소를 하는 노치샘
현재 노치샘은 원래 고려시대 절터로 고승이 도술로 판 샘이라고 한다
바위에서 나오는 생수는 물맛이 뛰어나 염병(장티푸스) 같은 돌림병이 심하게 돌던 때도
이 물을 마신 사람은 신기하게 병에 걸리지 않고 병을 이겨냈다고 전해오고 있다
물을 쓰다 부족할 때에는 우물속 달팽이 모양에서 물을 떠야 하는데 반드시 마을처녀가 물을 퍼올려야 할만큼 정하게 여겼다
주산제 때는 정월 초하룻날 우물을 품고 새끼줄로 금줄을 쳐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해놓고
당산제 당일 이른 새벽 제사에 올릴 정안수를 뜨러가면 산신인 호랑이가 샘 주위를 돌며 지키다가
제사가 시작되고 첫물을 올리는 것을확인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어른신들도 많다
이렇듯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식수로, 또 병을 이기게 해주는 약수로, 신비로운 전설의 성수로,
오늘도 백두대간을 찾는 탐방객이 한모금 목을축이며 쉬어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 수정봉(해발 804.7m)
수정봉은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면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 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산성 남쪽에 위치한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이룬다
성삼재 - 만복대 - 고리봉 - 수정봉 - 여원재 등산지도
발자취
2016. 7. 9. 08:45 ~ 18:25........(9시간 40분 소요)
성삼재 - 고리봉 - 만복대 - 큰 고리봉 - 고기삼거리 - 노치샘 - 수정봉 - 입망치 - 여원재(약 20km)
오늘 산행 계획은 성삼재에서 만복대 여원재를 지나 매요마을까지 약 29키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폭염주의보로 인하여 산행 출발시점부터 만복대 정상까지 바람한 점 없는 그야말로 찜통 더위였다
날씨로 인해 일행 중에 머리가 아픈 환자 발생하여 고기삼거리에서 버스 이용 여원재로 이동했으며,
후미그룹 모두 날씨 및 늦은 산행시작으로 인해 매요리까지는 무리라며 여원재까지만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철인처럼 달리는 선두그룹도 매요마을까지 가지 못하고 여원재까지만 산행하였으니 얼마나 힘든 하루였는지 알수 있다
이렇게 더운 날, 긴 산행은 무박으로 했어야 한다면 모두 아쉬움을 토로한 하루였다
이제 지리산 종주만 남은 백두대간 끝나면 뭐하지.....?
▲ 삼한시대 마한왕이 성이 다른 장군 3명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는데서 유래한 성삼재, 좌측이 노고단이고 우측 뒤쪽이 종석대이며,
백두대간 마지막 한구간 남은 지리종주 출발지이다.
▲ 성삼재에서 심원마을 쪽으로 조금 내려선 들머리
이곳에서부터 고리봉까지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무더운 날씨로 인해 진행이 더디어 진다
▲ 더위와 싸우며 도착한 고리봉, 멀리 성삼재와 좌 노고단, 우 종석대가 선명하다
▲ 소금배를 묶어 두었다는 전설이 있는 고리봉 자화상
▲ 고리봉에서 단짝 조릿대와 자화상
▲ 고리봉에서 바라 본 남원시 산동면의 운해, 고추잠자리가 하늘 높이 떠 다니는 모습이 이채롭다
▲ 그늘없는 만복대 구간, 굴러갈 것 같은 공바위와 그 뒤로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 공바위 위에 올라 섰다가 가야된다고 다들 자화상 남기고 그늘 없는 만복대로 서둘러 이동했다
▲ 공바위 자화상, 뒤는 고리봉 방향이다.
▲ 만복대로 향하면서 뒤돌아 본 성삼재와 노고단
운무가 남원쪽에서 함양쪽으로 넘지 못하고 춤추는 아름다운 모습이 더운 날씨에 위안이 된다
▲ 아무리 더워도 만복을 준다는 만복대에서는 막걸리 한 잔 하며 쉬어갑니다.
▲ 자화상
▲ 만복대에서 바라 본 가야할 서북능선, 뽀족한 곳이 큰고리봉이고 그 아래가 정령치이다
▲ 정령치 도착
옛날 마한시대에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지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지리산 주 능선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너무 더워 정령치에서 청운님이 명품막조 전체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돌렸는데 꿀맛이였다
▲ 끊어진 대간길 이어주려고 하는 공사인지는 모르지만 정령치는 한참 공사중이다.
옛날 서북능선 종주를 하면서 이곳 정령치에서 텐트치고 비박을 한 추억이 있다
▲ 큰고리봉 정상
바래봉 화살표 지점이 지리산 천왕봉이고 우측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며
이곳에서 직진하면 세걸산 바래봉으로 서북능선이 이어지고 좌측으로 꺽어 고기삼거리로 내려서야 대간길 이어진다
▲ 자화상
▲ 큰고리봉에서 바라 본 반야의 전설이 있는 반야봉, 이곳에서 바라보니 더욱 웅장하다
▲ 큰고리봉에서 고기삼거리 방향으로 약 1키로정도 내려서 넓은 곳에서 명품막조님들 점심 해결한다
아나고 무침과 회비빔밥으로 ...... 또 양주 폭탄주로 .... 정말 명품막조 답다
▲ 멋지고 맛나게 점심 해결하도록 찬조한 분들에게 박수로 답례를 하고 다시 힘을 내 고기삼거리로 이동한다
▲ 고기삼거리 도착
이곳에서 몸이 아픈 소나무님과 더위 먹어 힘들어하는 거미님 등 4명이 버스를 이용 여원재로 이동하고
나머지 막조님들은 콘크리트 열기가 푹푹 올라오는 아스팔트길과 농로길을 걸어 노치마을까지 가야한다
▲ 무더운 날씨 탓에 고기삼거리에 등산화 풀고 쉬면서 물로 더위 식히는 막조님들
▲ 콘크리트 열기 푹푹 올라오는 도로를 따라 노치마을로 이동한다
▲ 2
▲ 노치마을로 가면서 뒤돌아 본 큰고리봉
▲ 노치마을 이정석과 뒤로 수정봉, 좌측 봉우리로 올라 우측 끝이 수정봉이다
▲ 노치마을 자화상
▲ 노치마을 보호수
▲ 전설이 있는 노치샘
▲ 노치샘 유래
▲ 2
▲ 3
▲ 노치마을 담벼락에는 집집마다 이렇게 다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 노치마을 뒷산에 있는 수령 250년된 소나무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산 6외 1번지에 있는 소나무 4본으로 수고 14.8m ~ 17.0m, 나무둘레 2.9m ~ 3.8m이다
▲ 여기서부터 약 250m 높이의 된 삐알을 치고 올라야 한다
▲ 2
▲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구룡폭포에서 올라오는 곳과 만나는 지점으로
여기만 올라서면 완만하게 수정봉까지 이어진다
▲ 노치마을 뒷산, 된삐알 치고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상의 탈의하고 땀을 식혔다
약 2년간 백두대간 하면서 상의를 벗고 쉬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선두는 여원재를 지나 매요마을까지 간다고 하였으므로 우리는 여원재까지만 가니 시간이 있어 좀 여유를 부렸다
▲ 수정봉 가는 길에 만난 기암,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고인돌 같다
▲ 더위와 싸우며 도착한 수정봉(해발 804.7m)
수정봉은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이다
▲ 이곳에서 잠시 땀을 식힌 뒤 입망치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700봉에서 배낭털이를 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 2
▲ 3
▲ 입망치(笠望峙) 도착
여기서 다시 700봉까지 올라야 한다
입망치는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와 운봉읍 행정리 갓바래를 이어주는 고개로
뜻을 새기면 삿갓(笠)을 바라본다(望)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듯 하다
▲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700봉에 도착했다
배낭터리를 하니 맥주와 막걸리가 점심때 먹은 양만큼 배낭에서 나온다, 술이 남아 다시 배낭에 넣어 하산했다
▲ 여기까지 가져온 캔맥주가 얼음이 둥둥 떠 있다, 그기다 도라지꽃을 뛰우니 금상첨화다
배낭털이가 이렇게 풍성할 수가 대간길 함께하면서 서로를 챙기는 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대단한 복희야님과 산적회장님, 700봉에서 출발 전 한 컷 남기네요
▲ 여원재 도착 저 앞에 우리들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 여원치 민박에서 선두에서 준비해 놓은 막걸리와 파전으로 하산주를 하고 목욕탕으로 이동했다
▲ 여원재(女院峙, 해발 470m)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고개로 산줄기는 고남산과 수정봉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고려말(1,380년, 우왕 6년) 이성계가 황산전투에 임할 때 어느 노파가 꿈에 나타나 고남산 산신단에 올라 3일간 기도하고
출전하라고 알려주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다
이성계는 꿈 속의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 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여원재의 서쪽 약 200m 지점에는 황산대첩 승리에 대한 보은의 뜻으로 만들어진 마애불상(전북유형문화재 제162호)이 있다
▲ 대간을 하면서 두번째 온 두꺼비집 식당과 나, 언제 다시 올까 하는 생각에 한 컷 남겨본다
▲ 두꺼비집에서 어탕으로 하산주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이제 이런 추억도 지리종주 하루만 하면 끝난다. 길었던 대간길 함께한 이들이 자꾸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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