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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축제와 천년고찰로 유명한 비슬산(2019. 4. 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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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축제와 천년고찰로 유명한 비슬산(2019. 4. 22)

지리산 독사 2019. 5. 1. 23:21

 

▲ 비슬산 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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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슬산 천왕봉(琵瑟山 天王峰)

비슬산은 정상부의 바위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형상이어서 비슬(琵瑟)로 불리고 있으며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 경남창녕군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北팔공 南비슬로 지칭되고 있고 팔공산은 남자의 산 비슬산은 여성의 산으로 비유되며 최고봉은 천왕봉이다

비슬산에 관한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문헌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여상우포산(予嘗寓包山 : 내가 일찍이 포산에 살 때)이란 기록이 있다.

2014년 3월 1일 대견사 개산일에 비슬산 최고봉 지명이 대견봉에서 천왕봉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최고봉 지명에 대한 착오를 바로 잡은 것으로 일부 유림들이 1997년 명확한 역사적 근거와 행정 절차를 결여하고 비슬산 최고봉에 대견봉으로 표지석을 설치하였으나 역사적 자료, 지명전문가 및 교수들로 구성된 지명심의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비슬산 최고봉 지명을 천왕봉으로 변경하고 대견봉 표지석은 당초의 대견봉으로 이설하고 현재의 천왕봉 표지석을 새로히 설치하였다

또한 주민들도 오랫동안 천왕봉 등으로 불러 왔었고 비슬산의 산신은 정성천왕(靜聖天王)으로 한가지 소원을 꼭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으며 정상부 능선 북쪽 200m부근에는 천왕샘도 있다

▲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는 조화봉발자취▶ 언제 : 2019. 4. 22.(월) 10:00 ~ 16:40....6시간 40분 소요
▶ 어디 : 유가사 - 수도암 - 도통바위 - 비슬산 천왕봉 - 월광봉 - 조화봉 - 대견사 - 대견봉 - 유가사 ... 약 13km
▶ 누구와 : 중전, 작은아들, 나(3명)   전날까지 비슬산 참꽃 축제기간이였는다 해마다 축제기간에 한 번 간다는게 시간이 나질 않았으나 이번에는 용케 축제 마지막날 휴무로 인하여 약 14년 만에 비슬산 참꽃 구경을 했다   14년 전에 갔을때는 비슬산 대견봉이였고 조화봉에는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없었으며 대견사에는 삼층석탑 만이 대견사터라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14년 전 눈쌓인 겨울에 갔을 때 조화봉에서 200m 거리의 대견서터를 바라봤을때 스님 두분과 처사 한 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산속에 혼자 있다보니 반가운 마음에 달려내려가니 스님들이 안보여 고함을 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삼층석탑에서 점심을 먹고 유가사로 하산, 유가사 찻집에 들러 보살님에게 "오늘 대견사터에 스님 두분이 올라간 사실이 있는지 물었으나 이겨울에 누가 올라가겠느냐"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집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드니 한겨울 산속에서 헛것을 보았다며 앞으로 혼자 산에 가지 말라고 한 추억이 생각나는 산이 비슬산이다

▲ 유가사 일주문 전에 있는 비슬산 등산 안내도

   일요일인 어제까지 참꽃축제를 했고 오늘은 월요일이라 차량이 없어 일주문 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신행을 했다

 

▲ 일주문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유가사까지 간다

 

▲ 유가사 입구에 있는 "유가사 108돌탑을 세우며"

   유가사는 하산길에 들리는 곳이니 바로 수도암쪽으로 올라간다

 

▲ 14년 전에 왔을때는 작은 절에 고저넉한 멋이 있었는데 이제는 불사를 많이하여 너무 큰 절간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한창 공사중인데 보기는 좋아도 옛 멋은 사라지는 느낌이다.

 

▲ 유가사 입구에서 수도암 방향으로  

 

▲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만나는 수도암

 

▲ 이제 이곳에서 도성암 방향 콘크리트 도로를 버리고 등산로로 접어드는데 계속된 오르막이다

   14년 전 겨울에 혼자 이코스대로 산행을 했는데 그때는 드렇게 힘든줄 몰랐는데 오을은 왜 이리 힘든지....! 

 

▲ 이곳에도 돌탑을 쌓아 놓았다

 

▲ 약 1시간 10분정도 된비알 치고 올라 처음 만나는 전망대에서 주변 산세 구경하며 쉬어간다

   그러나 아들은 같이 가지 않고 혼자 내빼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 전화를 하니 나보다 한참을 앞서 있었다

 

▲ 이제 천왕봉 400m 금정산

 

▲ 천왕봉 400m를 남겨두고 바위 뒤로 참꽃이 너무 예쁘서 한컷했다

    그러나 이후 참꽃 군락지는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였는데......!

 

▲ 비슬산 천왕봉(琵瑟山 天王峰)

비슬산은 정상부의 바위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형상이어서 비슬(琵瑟)로 불린다.

비슬산 천왕봉은 예전에는 대견봉이였는데 2014년 3월 1일 대견사 개산일에 최고봉 지명을 천왕봉으로 변경되고 천왕봉에 있던 비슬산 대견봉은 대견사 뒤 1,034봉으로 옮겨 대견봉으로 하였다.

 

▲ 비슬산 천왕봉 유래

 

▲ 비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참꽃군락지

   좌측이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는 보화봉, 우측이 1,034봉인 비슬산 대견봉이다

 

▲ 월광봉 직전, 중전마마와 작은 아들

 

▲ 비슬산 월광봉(1,003m)

 

▲ 정말 오랫만에 산에 갔이 갔는데 참꽃 때문인지 힘들다는 소리는 안해서 좋다

 

▲ 참꽃 군락지, 너무 예쁘서 발걸음을 자꾸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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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봉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비슬산 천왕봉, 우측으로 월광봉이다

 

▲ 대견사 뒤쪽에 도착하여 바라본 조화봉, 이곳에서 중전과 작은아들은 대견사로 가고 혼자 조화봉을 갔다 왔다

 

▲ 비슬산 명물 톱바위, 한분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조화봉 방향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 비슬산해맞이제단 뒤로 조화봉 정상석

 

▲ 조화봉 정상과 뒤로 강우레이더 관측소

 

▲ 이제 조화봉에서 대견사로,

   좌측이 1.034봉인 비슬산 대견봉, 중앙이 비슬산 천왕봉, 우측이 월광봉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9교구인 비슬산 유가사, 예정에는 좌측 삼층석탑 만이 이곳이 절터임을 알려주었는데 이제는 옛 고찰의 명승을 찾아 불자분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 되어 있었다

   대견사는 "크게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으로 신라 현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연스님이 젊은 시절 참선에 몰두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 유명하다. 또 당나라 황제와 관련된 일화부터 다양한 풍수 이야기까지 '스토리의 보고'라고 할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일제에 의해 1917년에 강제로 폐사된 후 터만 남아 있다가 2014년 3월 1일 대견사 중창 개산대제식을 갖고 100여년만에 복원다.

대견사 앞에 있는 삼층석탐은 지금의 암반아래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세운 것이라 한다

 

▲ 대견사 앞에 있는 부처바위

 

▲ 코끼리 바위라고 하는데 내가 사진을 잘못 찍은 건지 코끼리가 안 보인다

 

▲ 작은거북바위

 

▲ 대견봉으로 가면서 내려다 본 대견사, 대견사 주변에는 수많은 바위들이 전설을 담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 비슬산 천왕봉에서 옮겨 놓았다는 '비슬산 대견봉' 정상석을 보고싶어서 대견봉으로 가고 접었으나 중전과 아들이 참꽃군락지 중앙으로 내려가면서 더 많은 꽃 구경을 하고 좌측으로 해서 유가사로 하산하자고 하여 아쉽지만 오늘은 중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너무 환상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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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조화봉을 배경으로 한컷하고 유가사로 하산했다

 

▲ 병풍바위

   비슬산 천왕봉을 유가사 쪽에서 올려다 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맑은 날 오후에 남쪽에서 비치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이 난다고 한다

 

▲ 병풍바위 전망대를 지나 계곡에서 잠시 족욕을 하고 계곡을 건너면 비슬산 천왕봉 직등등로를 만난다

 

▲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가 세워져 있는 유가사 뒤쪽으로 해서

   많은 탑과 돌에 새긴 시를 읽으며 유가사 경내로 들어간다

 

▲ 부처님오신날 행사준비로 바쁜 유가사, 14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변해 있었고 지금도 변신 중이였다

 

▲ 시방루

 

▲ 14년 전 비슬산 산행시 범종루는 1층이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금은 2층으로 증축되어 있었고

   지금도 한창 공사중으로 인해 옛날 유가사의 고저넉한 풍경과 멋은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