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7년 만에 찾은 『통도사 19암자』 산행 "2020. 5. 3." 본문
▲ 비로암, 부처님 오신날 행사로 인해 줄지어진 연등과 만발한 꽃이 어우러져 절집 마당이 화사하다
▲ 서운암 장독대, 예전에 공작이 손님맞이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 통도사 19암자 중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 백운암 목단
▲ 백운암 목단
▲ 백운암 금낭화와 무늬비비츄
▲ 통도사 19암자 안내도
▲ 발자취
▶ 언 제 : 2020. 5. 3(일). 08:08 산행시작 ------ 8시간 11분 소요
▶ 어 디 : 지산마을--축서암--반야암--비로암--백운암--극락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사명암--백련암--옥련암--서운암 장경각--서운암--안양암--수도암--취운암--보타암--통도사--관음암--보문암--무량암--보현암--지산마을.......21.30km
▶ 누구와 : 우정산그리뫼 산악회 회원님
▶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 불아, 불사리, 가사가 보관되어 있으며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우리나라 3대 사찰에 속한다.
영축산의 유래은 「영축산과 영취산, 취서산과 축서산」 등 4가지로 쓰여 혼선을 빚어왔던 것을 2001년 1월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였다. 이는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법화경을 설파했던 곳이 '영축산'이며 신라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때도 이 이름을 본딴 것으로 전해지므로 영축산이라는 명칭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일명 영취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 있다는 뜻이며 통도사 일부문에는 영취산 통도사로 쓰여 있다.
▲ 지산마을 표지석이 있는 이곳에서 버스에 하차 축서암으로 올라간다
▲ 밤부터 내린비는 소강상태, 하늘도 암자 산행을 도와주니 다들 마음은 즐겁다
▲ 1. 축서암
축서암 입구 신식 건물, 저 뒤편에 축서암이 자리잡고 있다
▲ 축서암은 1711년 창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63년에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사찰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 축서산이어서 붙인 것으로 추정되고, 축서암에는 선화가로 유명한 수안스님과 원로스님이신 초우스님이 주석하셨던 암자이다
▲ 축서암 마당에서 우정산그리뫼 정기산행 단체 한컷 남기고 반야암으로 간다
▲ 축서암에서 영축산으로 오르다 좌측으로 진행하여 비로암을 갔다가 백운암으로 갈 예정이였으나 수정하여 반야암을 먼저 가기로 했다. 정말 편한 농로길을 따라 반야암으로 간다.
▲ 2. 반야암
199년 지안스님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숲속에 둘러쌓여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 청향정, 세진정이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지안스님께서 썼으며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 반야암 출렁다리, 조용히 건너라켔는데 아무리 조용히 걸어도 조용히 걸을 수가 없는 출렁다리이다
▲ 3. 비로암
고려 충목왕 1년(1345년) 영숙(靈淑)스님이 창건, 조선 선조 11년(1578년) 태흠대사가 중건하였고 다시 근래 원명화상이 중수한 암자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떨어진 곳에는 통도사 8경 가운데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다.
▲ 비로암 또한 울창한 숲속에 조용히 앉은 암자이다. 이곳에서 보면 멀리 정족산과 천성산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 비로암 작은 연못의 물레는 계속 돌고 안에는 올챙이만 노닐고 있었다
▲ 4. 백운암
백운암은 892년(신라 진성여왕 6년) 조일스님께서 창건했으며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810년 침허스님게서 중창하고 1970년대에 경봉스님께서 후원하여 크게 확장했다. 통도사 암자 중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수도처로 유명하다. 특히 만공(1871~1946) 스님께서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등 고승들의 일화가 전한다.
암자를 사이에 두고 좌로는 금수샘, 우로는 은수샘이 유명하다. 그러나 금수샘은 암자에서 막아 놓아 찾기가 힘들다.
▲ 비로암을 지나 백운암에 오르자 짙은 안개로 인해 운치를 더해준다.
▲ 스님이 계시는 우측 바위쪽이 주능에서 금수샘 탐방 후에 백운암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그 위쪽을 막아 놓았다.
백운암을 나서자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여 우산을 쓰고 극락암으로 향했다.
▲ 5. 극락암 극락영지와 홍교
원광 경봉스님의 혼이 깃든 극락암은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건립된 사찰이며, 경봉스님이 중건, 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 앞에는 영월루가 있고, 연수당, 수세전, 독성각과 함께 33조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 있고, 경봉스님의 거쳐였던 삼소굴과 함께 암자로서는 큰 규묘이다.
극락영지는 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과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와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며 우리 가족의 영가도 이곳에 모셔 놓았다
▲ 연못인 극락영지는 통도 8명 중의 하나이며 홍교는 극락으로 가는 다리로 경봉스님께서 71세 때인 1962년에 만들었다.
▲ 아미타부처님을 보신 극락암 무량수각, 무량수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수명'인 극락을 의미한다.
▲ 극락암 무량수각 안내도
▲ 극락암 좌) 원광제와 우) 삼소굴
▲ 원광제와 삼소굴 안내도
▲ 극락암을 내려와 이곳 반야암 입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서축암으로 간다.
직진하여 도로를 따라 갈 수도 있으나 우리는 산길로 질러 간다. 그러나 금수암으로 먼저 가려다 약간의 알바를 한 곳이다.
▲ 6. 서축암
서축암 현판은 월하스님께서 썼으며, 1996년 수련화보살과 월하스님, 원행스님께서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스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전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약수터 뒤에 옮겨져 있다.
▲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서축암 다보탑
▲ 서축암을 나와 주차장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그러나 점심 도중에 비가 와서 비옷을 입고 우산을 이용 비를 피하며 웃음이 가득한 점심시간을 보내고 금수암으로 간다.
19암자 산행 길을 내가 알고 있어 이곳에서부터 내가 선두에서 진행했다.
▲ 7. 금수암
수행도량으로 조용한 암자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가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숲속에 숨어 있는 암자로 예전에는 개가 짖어 사람이 왔다간 것을 부처님이 알았을 것인데 이제는 개도 짖지 않는다.
▲ 금수암의 석탑, 석등, 법당, 30여명이 넘는 우리 일행이 웅성거려도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 그저 침묵만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잠시 왔다 간다
▲ 8. 자장암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통도사 창건에 앞서 수도하던 곳이다. 옛 이름은 자장방이라 하여 통도서 경내의 칠방의 하나로서 자장율사의 제자들이 매양 수도하던 암자이다. 법당 뒤 암벽의 작은 구멍에는 자장율사가 살게 하였다는 금개구리(금와공)가 유명하다.
▲ 좌측 사진은 이번에 찍은 것이고 우측 사진은 2013년도에 찍은 것이데 같은 위치에 모양이 다르다
절마당 입구에는 넓은 바위를 얹어 사각형으로 새롭게 단장하였고, 2013년에 있었던 우측 둥근모양은 계단 아래로 내려 옮겨 놓았다
▲ 금와보살
자장암 뒤 바위 구멍이 금와보살이 평생을 사는 금와공이다, 보이나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변화금와에 말하기를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뛰어 다닌다. 절의 스님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 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개구리를 잡아 함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상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라고 하였다.
▲ 보이나요. 금와보살님이..............!
▲ 암자 뒤 바위 아래 구멍에 금와보살이 살고 있다.
자장암 화장실 뒤쪽으로 해서 사명암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선두 외는 스님의 만류로 화장실 뒤쪽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암자 밖으로 나가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다 좌측 산길로 접어들어 한 봉우리 올랐다 사명암으로 왔다
▲ 9. 사명암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수호한 곳이라 한다.
1573년(선조6)에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 신백 두 스님이 암자를 지었다고 하며, 이후 혜각스님과 동원스님이 거주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갖추게 되었다
▲ 사명암 현판 뒤에는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 사명암을 오르려면 연못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하며, 좌우측으로 대칭되게 정자와 건물이 지어져 있다.
사색을 즐기며 시 한 수 읊조릴 수 있는 조용한 절간이였다
▲ 사명암을 나와 이제는 내가 한 달에 한 두번 약수를 떠러 가는 백련암으로 간다
▲ 10. 백련암
창건은 1374년(공민왕 23) 월화대사에 의해 이룩되었고 1634년(인조 12) 현암대사가 중건하였다.
법당은 백련사라 하였으며 대한제국 말기에는 남방의 선찰로서 유명하였다. 좌측이 강선루이고 우측이 법당이다
▲ 백련암 입구로 예전에 이곳이 소각장 이였다가 최근에는 화단이였는데 이번에 달마대사가 자리잡고 있다.
▲ 백련암
▲ 11. 옥련암(큰빛의 집)
옥련암은 1374년(공민왕23)에 쌍옥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국, 청진 두 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옛날 이 옥련암에 장군수라는 우물이 있었다고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매우고 그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 힘센 스님이 나오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 옥련암의 아담한 장독대
▲ 오늘 두 번째 단체사진을 남기고 서운암으로 향한다.
장시간 걸었음에도 하나도 지친 사람이 없다. 아마 하늘이 도와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기 때문이라 믿어본다.
▲ 16만 도자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서운암 장경각
이곳은 이렇게 사진 한 장 남기고 바로 서운암으로 진행한다. 이곳에도 불상이 있어 참배를 할 수 있다
▲ 서운암으로 가면서 만나는 멋진 솔
▲ 12. 서운암
3,000여 불상을 흙으로 구워낸 도자삼천불과 십육만도자대장경,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됀장, 간장이 유명하며, 서운암 주변 약 5만여평 야산에 1백여종의 야생화 수만송이를 심어 야생화군락지로 유명하며, 이에 따른 행사도 하고 있다.
▲ 서운암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안양암으로 간다
▲ 13. 안양암
안양암은 통도사 8경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한 암자이다. 1295년 찬인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1865년 우담대사가 중창하였다. 그후 현대에 와서 우송화상이 중수하였으며 안양은 곧 극락세계를 뜻하므로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암자이다
▲ 안양암 경내를 가로질러 수도암으로 간다
▲ 수도암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안양암
▲ 14. 수도암
1372년(고려 공민왕 21)에 이관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정신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안양암에서 산길로 수도암에 도착하니 철문이 닫혀 있었다. 스님에게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산짐승 때문에 막아 놓은 것이니 사람은 들어와도 된다고 하여 철문을 열고 절마당으로 들어갔다
스님과 스쳐가는 환담을 하고는 절집을 나서면서 바로 좌측 산길로 해서 취운암으로 간다
▲ 15. 취운암
취운암은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 한다.
1650년에 우운대사가 처음 창건하였고, 1795년에 낙운대사가 중건하였다. 그후 1969년 태일화상이 중수하였다. 예전에 취운암 법당 뒤에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하였다 한다.
▲ 취운암
▲ 16. 보타암
1927년 재덕, 호전 두 비구니가 창건하였고, 1935년 정운, 호전 두 비구니가 증축하였다.
통도사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라고 한다.
▲ 통도사 금강계단
통도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따라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바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 근본도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보셔진 금강계단에서 계(戒)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 영취산 통도사
오늘은 15암자를 돌아보기로 하였으나 시간이 있어 19암자를 다 돌아보기 위해 통도사 경내는 패스하고 바로 무풍한송로를 따라 영취산문을 지나 관음암으로 간다
▲ 통도사 성보박물관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문이 굳게 닫혀 있다
▲ 무풍한송로를 따라 영취산문으로 나간다
▲ 매표소가 운영되는 영취산문
▲ 17. 관음암
30여년전 태응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원래 대처승의 가족들이 살던 곳이였으나 신도들과 함께 집과 주변 논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암자가 조성되었다 한다 자광전 앞에 석등과 돌 난간을 두르고 미얀마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사리석탑이 있다
▲ 자광전과 5층 사리석탑, 조용한 절간 잠시 들러 사진만 남기고 바로 돌아 나와 보문암으로 간다
▲ 18. 보문암
가정집 또는 양반이 거주하는 집처럼 보이는 보문암은 개인 법당으로 경남 의령이 속가인 덕봉스님이 1992년 창건하였다
통도사 직할 암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산문 밖 암자는 관음암, 보문암, 무량암, 축서암이 있고, 월하스님이 쓴 보문암 현판이 걸려 있다.
▲ 19. 무량암
암자폐쇄로 출입이 통제된 무량암, 법당 현판은 월하스님이 쓴 무량수전으로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2013년도 탐방하였을 때 공양주 없이 관우스님이 기거하고 계셨고 당시에 19암자 산행을 하면서 약 40여분간 차를 마시며 세상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7년 후에 찾으니 암자가 폐쇄되어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 19암자 외 보현암이란 곳이 있어 한번 올라가보니 역시나 부속암자는 아니였다
이 건물 뒤에는 옛 건물이였는지는 몰라도 헐고 난 이후 공터로 남아 있었다
▲ 보현암에서 되돌아 내려와 아침에 출발했던 지산마을 표지석 있는 곳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다
점심 때를 제외하곤 하루종일 비가 참아주었고, 같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든 우정산그리뫼 가족들과의 산행, 하루의 피로를 풀고 월요일 새로운 마음으로 일터로 가는데 이만한 보약이 없으리라 생각해본다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나라빚이 1천 5백만원에 육박하는 걸로 나타났으며,
코로나19로 추경이 늘어나면서 국가채무도 더 늘어나 전체 나라 빚은 올해 8백조원을 넘을 걸로 보인다고 한다.
채무가 자꾸 늘어나면 미래세대에 빚을 물려주는 꼴인가? 에구 모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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