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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삼신봉, 『송정굴 - 쇠통바위 - 하동바위』2부 "2020. 7. 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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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삼신봉, 『송정굴 - 쇠통바위 - 하동바위』2부 "2020. 7. 11"

지리산 독사 2020. 7. 16. 16:37

▲ 쇠통바위 = 진짜 옛날 곳간 출입문에 채웠던 쇠통처럼 생겼다

그 옛날 자물쇠통과 닮았다하여 쇠통바위라 부르며 저 열쇠 구멍에 맞는 바위가 청학동 어디에 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자물쇠바위를 이곳에 꽃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데.........

쇠통바위 뒤로 1301봉이고 그 좌측 아래에 하동 독바위가 있다.

 

▲ 불일폭포(佛日瀑布), = 청학이 승천하는 것이 보이나요

불일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재위 1204년~1211년)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이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으며 지리산 10경 중 하나이다.

 

▲ 점심 후 조금 진행하면 만나는 이정목, 이 지점이 쇠통바위가 있는 곳이다

 

▲ 등로에서 금줄을 넘어 저 굴을 통과하여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쇠통바위를 만날 수 있다

    하늘문처럼 보이는 저곳도 쇠통바위 열쇠 구멍처럼 보인다

 

▲ 스틱과 배낭를 두고 오르는 일행

 

▲ 쇠통바위

 

▲ 쇠통바위 건너 암봉,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형상이다

 

▲ 일행들 먼저 올려 보내고 아래에서 한컷

 

▲ ㅎㅎㅎ 암봉에서 일행들이 한 컷 해준 자화상

 

▲ 쇠통바위 건너 앞봉에서 자화상

 

▲ 쇠통바위 뒤로 하동 독바위가 있는 봉우리

    그 옛날 곳간을 채우던 자물쇠를 닮은 쇠통바위 암봉에서 한 참을 즐기다 하동 독바위로 갔다

 

 

▲ 삼신봉에서 3.2km지점으로 금줄 처진 지점을 넘어 조금 내려서면 하동독바위가 나온다

    우리는 오늘 하루종일 산에서 놀기로 하였으니 멋진 독바위 구경하러 들린다

 

▲ 안개에 휩싸인 독바위 주먹이 날라갈 것 같은 느낌이다

 

▲ 독바위에서 천길 낭떠러지 아래 안개낀 청학동을 바라보면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으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 정말 요상하게 올라 앉았다

 

▲ 장불재

   이곳에서 삼선궁은 2.3km, 쌍계사는 4.9km이다.

   불일푹포까지 돌길 등로를 한참을 내려서야 된다

 

▲ 불일폭포(佛日瀑布), = 청학이 승천하는 것이 보이나요

    불일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쳐서 청학봉(靑鶴峰), 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재위 1204년~1211년)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하신 후 희종이 시호를 「불일보조」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으며 지리산 10경 중 하나이다.

 

▲ 우측 사진은 청학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좌) 불일폭포 상단, 우)는 하단

 

▲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하던 불일암, 옛날 암자가 요것이 맞것지요

    흰고무신과 장화가 나란히 있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스님은 없고 새소리만 요란하여 우리가 새소리에 답하여 암자에 사람 냄새 많이 남기고 쌍계사로 향했다.

 

▲ 대웅전도 깊은 산속 암자답게 자그마하여 정겹게 느껴졌는데 암자는 들어 갈 수 없었다

 

▲ 조용한 산속 암자인 이곳에도 코로나19 영향은 있었다

    물맛은 꿀맛이며 안내문 또한 인상 깊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종이컵으로 물을 드신 후 사용하신 종이컵은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 조용한 불일암에 나란히 앉아 사람 냄새 많이 남깁니다.

 

▲ 요렇게 나란히 서서 멀리 왕시리봉을 구경하면서~~~~

 

▲ 예전에 올랐던 왕시리봉이 불일암에서 보니 까마득하다

 

▲ 청학동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그러나 30여년만에 발길하니 예전 건물을 다 허물어지고 그 흔적만 남았고, 국립공원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옛날 이곳 작은 연못에는 피라미가 노닐었고, 허물어진 건물 앞 평상에서 어르신과 신선주 한병을 나누어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그 어르신은 가고 30면 세월이 흘렀으니 ~~~~~ 인생무상이로다

▲ 불일평전과 청학동 설명

 

▲ 예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소망탑, 바위에 한문으로 쓴 소망탑 글씨가 보이고, 탑에는 오랜세월을 견딘 흔적의 이끼가 풍성하였다

 

▲ 불일평전을 지키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아들과 딸도~~~~~

 

▲ 마족대(馬足臺)

    바위 위에 말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고 하여 마족대(馬足臺), 마적대(馬跡臺), 또는 마적암(馬跡巖)이라고도 불렀다. 용마(龍馬)의 발자국이 남은 흔적이라고도 하고 청학동에 살던 고운 최치원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자취라고도 전한다. 1744년 8월 지리산 청학동을 찾은 이계 황도익(1678-1753)은 냉연대(冷然臺)라고도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국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일화가 더해지기도 했다

 

▲ 쌍계사 대웅전과 진감선사 탑비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오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 국보 47호), 보물 3점(대웅전 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 보물 380호, 영산회상도 보물 925호)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 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권수경 황칠천국」에서 황칠 유황오리백숙으로 하산주를 하고 울산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되었다

▲ 내고향 맛집 ~~~잘 뭇으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