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 사는 세상
지리산 내원골, 소은산막 "2021. 5. 8." 본문
▲ 물 맑고, 작은 소와 풍경이 어우러진 내원골 쉬어가기 좋은 계곡이다
▲ 소은산막(素隱山幕)
은둔의 흔적이라고 해야하나, 수행의 흔적이라고 해야하나~~~
오래전부터 비어 있는 듯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어도 그 흔적 만큼은 옛 집처럼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일폭포 청학의 머리 위에서
▲ 청학이 살아 있는 불일폭포
▲ 지리산 내원골, 소은산막, 불일폭포, 도성암 발자취
▶ 언 제 : 2021. 5. 8(토). 08:00 산행시작 ------ 7시간 소요
▶ 어 디 : 국사암 -- 매봉 -- 금당 -- 묵자바위 -- 수행촌 -- 활인령 -- 소원산막 -- 고룡암터 -- 청학봉 -- 불일암 -- 불일폭포 -- 백학봉 -- 도성암 -- 사관원 -- 국사암 .... 약 11km
▶ 누구와 : 지리팀 4명
▶ 이번 지리산은 쌍계사 주변 수행처 등 옛 사람들의 추억을 찾는 산행을 했다.
진감국사 혜소, 보조국사 지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쌍계사와 그 주변 수행인들의 흔적...................,
지금은 그 흔적만 남은 곳도 있고, 집까지 고스란이 남아 있는 곳도 있으며,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는 문, 텃밭을 멋지게 일구어 놓은 곳, 그 흔적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었다
지리산은 어느 골짜기 어느 능선으로 가도 옛 선인들, 조상님의 흔적이 구석구석 담겨져 있다
이번코스는 거리도 짧고 어려운 산행이 아니라 울산서 06:00경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빨리 갔다가 빨리 오자는 의견으로 인해 평소와 같이 05:00경 출발했고 18:30경 귀울하여 간단히 저녁먹고 해산했다
▲ 국사암의 사천왕수(四天王樹)와 작은 일주문
국사암 입구 거대한 느티나무는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아나 천년을 이어왔다는 사천왕수이다
수령은 약 1,200년, 직경 1,100㎝로 1996. 8. 12자 하동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우리는 국사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국사암을 둘러본 후 금당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 국사암(國師庵)은 우측으로 명부전, 칠성전 등의 법당이 'ㄷ'자 건물로 되어 있다.
국사암은 804년 옥천사를 중창한 통일신라시대 선승 진감선사 혜소(慧昭, 774~850)께서 국사암도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월암이였으나 진감선사 혜소가 여러 차례 왕의 부름에도 나가지 않자 민애왕이 진감국사라 칭하였기 때문에 국사암이라고 이름 붙였다. 배우기를 청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자리가 없자 남쪽으로 새로운 절을 짓고 옥천사라 했는데, 화개동천과 불일폭포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큰 물길이 절 앞으로 흐르므로 쌍계사(雙磎寺)라는 이름을 정강왕이 내려주어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뒷편에 있는 문수전
▲ 문수전에서 바라본 국사암와 우물
▲ 등산로에 거대한 소나무, 넘어질까 받쳐 두었고 쌍계사와 불일푹포로 이어지는 길이다
▲ 좌측은 불일푹포, 직진은 쌍계사이다
우리는 우측으로 스님들의 산책로인 매봉을 갔다와 쌍계사 금당으로 가기로 했다
▲ 국사암과 금당 사이에 있는 매봉
이곳에서 낙엽이 없는 겨울이면 황장산이 조망되는 곳인데 우거진 숲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 금당으로 들어간다
▲ 금당에 들어서면 만나는 청학루, 뒷쪽으로 팔상전이 보인다
하동 쌍계사 청학루(河東 雙磎寺 靑鶴樓)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이다
청학루는 진감선사가 창건 당시에 세운 건물로서 처음 승려가 되는 이들이 수도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인계화상, 우하화상, 범성화상 등이 새로 고쳐 지었고, 지금의 건물은 1930년에 쌍계사 주지 손민화상이 손질하여 고쳤다.
청학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로 산의 경사면에 지어서 앞에서 보면 2층의 다락집 형태인 누각이며, 뒤에서 보면 1층이다. 거대한 자연석 주춧돌 위에 둥글고 굵은 참나무 기둥을 세워 마루를 얹었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1979년에 고산화상이 손질하여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하동 쌍계사 팔상전, 중앙 작은 건물이 영모전이다
하동 쌍계사 팔상전(河東 雙磎寺 八相殿)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이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나 조각상을 모시는 전각이다. 쌍계사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으로 지어졌다.~~~~~~~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는 보물 제925호로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그린 그림이다. 바탕 재질은 비단이며, 크기는 가로 273㎝, 세로 410㎝이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본존인 석가여래가 결가부좌하였고, 양옆으로 사천왕, 보살, 분신불(分身佛), 팔부중, 제자 등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림에 기록된 기록에 따르면 숙종 14년(1688)에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17세기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불화이다
하동 쌍계사 영모전(永慕殿)은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진영(동치 2년, 1863)을 비롯하여 지눌대사의 진영, 사명·부휴·벽송·소요·호원 대사 등의 진영을 모신 곳으로, 인조 19년(1641)에 벽암이 고쳐 지었고, 1978년 고산 화상이 새로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모전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여러 큰스님의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이다.
▲ 금당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두상)탑전(六祖頂相(頭上)塔殿)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이다.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의 개산(처음으로 산문을 연 것) 설화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頂上 : 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와 정상을 봉안하고 산문을 연 데서 유래한다. 그후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이라 하였다. 건물 안에 있는 육조장상탑은 7층으로 용담선사가 세웠다고도 하며 주변 목압사 터에서 옮겨 왔다고도 한다
▲ 쌍계사 팔영루와 9층 석탑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어노는 물고기를 보고 범패를 작곡했다는 팔영루와 9층 석탑,
9층 석탑 앞으로 직진하여 계곡을 만나면 좌측으로 진행하여 내원골로 올라간다
쌍계사는 성덕왕 23년(723)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하였다.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차(茶)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했으며, 정강왕(886~887) 때 옥천사에서 쌍계사로 이름을 바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항아리가 많이 있고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공양간으로 보이고, 돌담과 어우러진 기와담이 정겨워 한 컷하고 간다
말수를 줄이고 최대한 조용하게 ~~~~~
▲ 열려진 대나무 문으로 나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오르다 작은 다리를 만나면 좌측 계곡 옆으로 진행한다
▲ 내원골 초입을 지나 바쁠것도 없으니 물 맑은 계곡에서 잠시 쉬어간다
내원골을 따라 수행촌까지~~~~~
▲ 내원골에서 바라본 황장산
▲ 내원골을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묵자바위에 도착했다
왜 묵자바위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바위 아래 붓으로 쓴 글자가 있는데 오래되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먹물을 이용하여 붓으로 썼다고 해서 긍가~~~~!
▲ 위에서 바라본 묵자바위
묵자바위에서 부터 내원골 오름에는 작은 돌을 이용한 돌담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집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이끼와 수초가 푸른 목교도 지나간다
▲ 내원골을 건너면 바로 수행촌이다
▲ 수행촌의 대문, 참으로 옛스럽다
▲ 돌의자와 돌탁자가 손님을 맞는데, 빈집이라 근접하기가~~~~~
살며시 사진 한 장 남기고 바로 나왔네요
▲ 이곳은 마당에 잡풀이 우거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올해는 주인이 찾지 않았나 보다
▲ 돌탑이 있는 이 집은 내원암으로 수행하는 스님이 계셨던 곳이라고 한다
돌단풍이 돌탑을 휘감고 이끼가 자생하는 것으로 보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 수행촌을 지나면 너덜겅 길이다.
이제 활인령이 지척이니 잠시 쉬어간다
잠시 쉬는게 아니라 수행촌에서도 쉬고, 이곳에서도 쉬고, 활인령에서도 쉬고 계속 쉬면서~~~~~
▲ 청학봉으로 이어지는 소현로(素現路)와 소은산막(素隱山幕) 갈림길인 활인령이다
활인령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쌍계사에서부터 내원골을 지나 소은산막까지는 등산로가 2차선 도로와 같이 시원하게 나 있다
▲ 소은산막 전 너덜겅 지대는 금낭화가 엄청 많이 피여 있었다.
금낭화(錦囊花)는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다. 세뱃돈을 받아 넣던 비단 복주머니 모양과 비슷하고, 금낭화의 꽃 속에 황금빛 꽃가루가 들어 있어 금주머니꽃이라는 뜻인 금낭화라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등처럼 휘어지고, 모란처럼 꽃이 아름다워서 등모란 또는 덩굴모란이라 부르기도 하며, 꽃의 생김새가 옛 여인들이 치마 속에 넣고 다니던 주머니와 비슷하여 며느리주머니, 며늘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
▲ 소은산막 입구와 등산로 상의 디딤돌에는 사진과 같은 바둑판 형태의 무늬가 많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산막 주인이 직접 새겼다고 한다
▲ 소은산막 본채와 별채
좌측 별채에는 보과농원(菩果農院)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 소은산막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는 편액과 증미당(蒸米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소은산막 옆 건물에 보과농원(菩果農院)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무슨 뜻일까? 보살이 농사 짓는 집이라는 뜻일까?
▲ 소은산막의 또 다른 건물, 창고와 화장실로 추정된다
▲ 소은산막의 맷돌 2개가 다른 장소에 놓여져 있었다
▲ 소은산막과 고사리 밭을 지나 고룡암터로 가야 하는데 등산로가 희미하다
우리는 고사리 밭을 벗어나자마자 사진과 같이 풀숲을 헤치고 조금 올라 등산로를 만났다. 그러나 고룡암터까지는 산죽잎에 묻어 있는 꽃가루가 날려 옷이 누렇게 변하였다.
그래도 끝까지 전진, 옛 흔적을 찾아 확인을 하고 소은산막으로 되돌아 나왔다.
▲ 고룡암터로 추정되는 장소라 한다
GPS상에는 샘터로 나오며, 큰 바위 밑에 샘터가 있는데 올챙이들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 고룡암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자화상 남기고 소은산막으로 빽한다
▲ 활인령에서 점심
뒷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소현로(素現路)로 들어간다
▲ 첫번째 만나는 너구리쌍굴
바위 아래 큰 굴 2개가 서로 연결이 되는 형태이다
▲ 암적수(岩滴水),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인데, 언제 받아 마실 수 있을지~~~~
▲ 너덜겅에 무천대(無喘臺)라는 목패가 붙어 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뜻일까?
▲ 여기도 산죽
오전에 고룡암터 주변에서 산죽에 시달렸는데, 오후에도 시달리네요
▲ 향불암(向佛岩), 부처를 향한 바위라카는데~~~
흐르는 세월에 깨지고 부서졌는지 부처를 바라보는 바위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렴 어떠랴, 이곳을 지나면서 부처님의 마음을 조금만 생각하고 새기면 되지 않을까?
▲ 하심목(下心木)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만드는 나무라고 하는데,
나무가 썩어 목패가 바닥에 있는 것을 내가 다시 걸어 놓고 사진을 촬영했다
▲ 돈선암(豚禪岩)
돼지가 참선하는 바위라고 하는데 돼지를 닮았나요?
▲ 소은산막에서 목패가 붙은 소현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소현로는 산막주인의 호 소현을 사용하여 소현로라고 하였다 한다
▲ 부안임공원영지묘를 지나 청학봉으로 간다
깊은 산속인데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 청학봉에서 잠시 쉬고~~~
▲ 청학봉에서 불일암도 건너다 보고, 불일폭포 상단 청학의 머리로 간다.
▲ 불일폭포 상단에서 아래로~~~
▲ 불일폭포로 가면서 한 장 더 남기고~~~
▲ 불일암(佛日庵) 대웅전
불일암은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고려 21대 희종(熙宗)이 지눌이 머물던 암자에 불일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암자 이름을 불일암이라 했고 바로 옆 폭포를 불일폭포라고 하였다 한다
▲ 불일암 주지 일용스님(마스크 쓰신 분)과 방문 손님에게 설법하신 불상의 스님 한 분과 단체사진 남겼다
▲ 청학이 살고 있는 불일암
▲ 백학봉에서
낙엽진 겨울이면 이곳에서 불일폭포가 멋지게 보일 것인데 숲이 우거져 조금 아쉬웠다
▲ 백학봉에서 불일푹포 조망하고 도성암으로 간다
▲ 도성암 입구
▲ 흙과 돌을 이용해 지은 도성암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텃밭도 일구어 놓으셨는데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 사관원 입구에 있는 큰바위
시멘트를 이용하여 샘을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청소만 하면 시원한 물 맛을 볼 수 있다
▲ 흙과 돌을 이용해 지은 사관원
이곳도 자물쇠로 시정되어 있었고 주인이 찾은 흔적이 없었다
▲ 이곳을 넘어~~~
▲ 이렇게 목교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국사암으로 가서 산행을 마무리 했다
흐르는 계곡 물도 가만이 들여다보니
다같은 물이 아니더이다.
계곡 옆 풀 한포기 작은 나무 한그루도
맑은 하늘 바라보며 느리게 가더이다.
항상 같은 자리 지키는 그곳
편안함이 있는 산으로
흐르는 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감상하며
나는 천천리 가리다
-지리산 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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