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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화악산 적천사, 800년 은행나무 "2023. 11. 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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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화악산 적천사, 800년 은행나무 "2023. 11. 14."

지리산 독사 2023. 11. 17. 16:06

▲ 화악산 적천사(華岳山 磧川寺)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에 있는 화악산 적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64년(문무왕 4) 원효(元曉)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지음으로써 창건되었다.

828년(흥덕왕 3)에 왕의 셋째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했으며, 고승 혜철(惠哲)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지눌(知訥)이 1175년(명종 5)에 크게 중창했으며, 당시 참선하는 수행승이 언제나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 은적암, 백련암, 옥련암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1664(현종 5) 왕의 하사금으로 중수하였는데, 이 때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 1694(숙종 20) 태허(泰虛)가 크게 중건하였으나 의병들이 이 절을 중심으로 활동하자 관병들이 절의 누각과 요사채 등 일부를 소각시켰으며, 근래에 와서 명부전과 누각이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적천사에 앞에 있는 은행나무 두그루

    1983년 1월 25일 보호수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402호 은행나무 암수 두그루는 수령이 800년 되었다고 한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에 눌리는 느낌이 들고 나무껍질은 소나무 같이 생겼다

은행나무의 높이가 25~28m이고 가슴높이의 둘레가 11m이며, 나이는 8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의 추정은 고려 명종 5년(1175) 보조국사 지눌이 이 사찰을 중건하고 심었다는 전설에 의거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는 보조국사가 지팡이를 꽃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한다. 암나무로서 열매가 달리며 가지는 동서로 28.8m이며, 남북으로 31.3m이다. 동공이 없고 나무모양이 아름다우며 수새도 왕성한 은행나무이다

 

 

▲ 가까이서 보면 정말 소나무 같은 느낌이다.

    노란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고, 몇 잎 남지 않은 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니 겨울을 이기기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 은행나무 앞에는 비각이 있는데 세월탓인지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 주렁주렁 달린 일엽초

    은행나무에 기생하는 수많은 일엽초 은행나무에 도움일까 아님 해로움일까 ㅎㅎㅎ

    암튼 공존하는 것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 반대편에서 보니 두그루가 선명하게 보인다. 좌측이 암나무, 우측이 숫나무이다.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 직접보면 더 이쁘다. 그런데 떨어진 열매로 인해 냄새가 좀 ~~~~~

 

 

▲ 우리가 사는 집도 오래되면 보수공사를 하듯이 야도 세월가니 사람의 손을 빌려 보수공사를 했네 ㅎㅎㅎ

 

 

▲ 800년 은행나무에 도취되어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천왕문으로 들어간다

    천왕문에는 1690년(숙종 16)에 만들어진 유형문화재 제153호 목조사천왕의좌상(木造四天王椅座像)이 있으며, 무차루와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목조사천왕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천왕문의 좌우에는 절을 수호하고 있는 사천왕상은 몇 조각의 나무를 이어서 제작한 것으로 높이가 3.4m~3.8m인  거상(巨像)이다. 이 사천왕상은 거상이면서도 자세가 균형 잡히고 화려한 보관이나 갑옷, 지물(持物) 등이 정밀하고 세련되게 표현된 작품이다. 사천왕상 속에서 사리, 경판, 의류, 다라니 등의 복장품(腹藏品)과 복장기( 腹藏記)가 발견됨으로서 이 상이 조선 숙종 16년(1690)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 무차루(無遮樓)를 지나면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마당에서 돌아보면 무차루에 "화악산 적천사(華岳山 磧川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주문 형태를 갖춘 것 같다.

 

 

▲ 무차루 앞에서 바라본 것으로,

    좌측에 범종루, 우측에 무차루가 있고, 앞에는 사천왕상중수점안공적비(四天王像重修點眼功積碑)가 있으며, 좌측 소나무 두그루도 범상치 않다. 그리고 대웅전 뒤쪽으로 도솔암 가는길에 있는 소나무 또한 그 기개가 남달랐다

    범종루는 하늘과 땅, 물과 지하세계를 울리는 목어, 북, 범종이 나란이 있으며, 사천왕상중수점안공적비에는 적천사의 창건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 범종루와 비스듬이 기울어 서로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듯한 소나무 두그루

 

 

▲ 무차루를 지나면 대웅전을 만난다

    대웅전에는 1636년 조각승 현진(玄眞)이 만든 유형문화재 제529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다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1호)

대웅전은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상부에 배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나, 조선시대 초기의 기법도 잘 나타나 있어 학문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대웅전 괘불탱 및 지주(보물 제1432호)

괘불탱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그려진 괘불탱화로 규격은 1230x530cm이다. 괘불은 불교의식 때 절 마당에 걸어 놓고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제작된 거대한 불화이다. 장대한 규모의 적천사 괘불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이 연꽃가지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연꽃대좌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독존도(獨尊圖) 형식으로 화면 가득히 채워서 그린 것이다.

가슴의 영락장식, 머리에 화려한 보관, 장식적 도안의 가사(袈娑) 그리고 적·황·녹의 밝은 채색 등은 조선후기 불교문화의 융성을 잘 대변해 준다.

대웅전 앞 두 쌍의 괘불지주에 강희(康熙) 40년(1701)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이 괘불의 사용 유래를 알 수 있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 대웅전 좌측에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 명부전

 

▲ 대웅전 우측에는 적묵당(寂默堂)이 있으며,

 

 

▲ 대웅전 우측 뒤쪽에는 산령각과 독성각이 한 건물에 있다

 

 

▲ 대웅전 우측의 우물에서 물 한 잔 마시고, 출입이 금지된 조사전을 뒤로 하고 적천사를 나섰다

    그리 크지 않은 고즈넉한 적천사, 수령 800년된 은행나무 두그루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사찰이지만 절을 천천히 둘러보면 옛 절집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차루 옆 의자에 앉아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며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