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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5구간, 작점고개 - 눌의산 - 괘방령(2016. 1. 30) 본문

백두대간 산행

백두대간 25구간, 작점고개 - 눌의산 - 괘방령(2016. 1. 30)

지리산 독사 2016. 2. 9. 22:47

작점고개(능치재, 해발 340m)

김천 어모면에서 추풍령으로 넘어가는 한적한 고개로, 성황뎅이 고개 여덟마지기 고개라고도 한다.

작점고개란 고개 너머 서쪽(영동군) 마을인 작점리에서 딴 것이며 여덟마지기 고개란 충북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여덟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고갯마루 근처에  성황당이 있는 고개라 하여 성황뎅이 고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초창기 대간종주 취재팀들이 작점리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사기점 고개(해발 390m)

고개 남쪽의 김천시 봉산면 사기점리는 옛날 사기를 구워 팔던 마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사기점고개이다

추풍령(秋風嶺---해발221m)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위 추풍령 표석은 88올림픽 성화봉송로를 기념으로

88년 9월 5일 영동군에서 세운 것으로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가수 남상규님의 노래구정을 적어 놓았다

원래는 추풍령 일대가 분지이다 보니 인근 지역보다 가을이 일찍 들고 고개치고는 발달한 분지이다 보니 가을걷이가 풍성하다 하여

秋豊이라 했으나 오늘날에는 秋風으로 불리고 있으며 옛날에는 중요한 국사적 요충지였다

괘방령과 추풍령

옛날 과거길 괘방령은 넘어가면 장원급제 방이 내걸렸고 추풍령을 넘어간 벼슬아치는 추풍낙엽처럼 벼슬자리가 떨어졌다는 설이

전해져오는 괘방령과 추풍령 --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추풍령으로 쳐들어 갔다가 괘방령으로 쫓겨났고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추풍령으로 남진했다가 괘방령으로 퇴각했다는 역사가 전해오는 이 두 고개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눌의산(743m)

추풍령 남서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대간꾼 외는 등산인의 발길이 뜸해 오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의 이름인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어눌하다 혹은 더디다 는 뜻인에

정상에 서면 조망이 활짝 열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결코 어눌한 산이 아닐듯 하다

눌의산의 멋쟁이들

좌로부터 써니님, 천둥님, 복희야님, 청운님, 거북이님, 수피야님, 삼신님, 산적님, 행복한 오늘님

가성산(720m)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독립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아래에 고속도로와 철도가 경쾌하게 달리고 있다

동쪽의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한 봉우리로서 가성(枷城)은 화령권의 '작점'이나 '사기점' 처럼 소규모의 진지가 있었단 곳이라 한다 

대간길의 눈 덮힌 처진 소나무

괘방령(掛榜嶺)---해발 300m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으며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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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점고개 - 추풍령 - 눌의산 - 가성산 - 괘방령 등산지도

발자취

2016. 1. 30. 07:50 ~ 16:30........(8시간 40분 소요)

정상 특파원과 함께한 백두대간 25구간, 현재까지 속리산 구간과 백학산 구간 2구간을 바쁜 업무로 인해 빼 먹어 담에 땜빵을 해야한다

이번 구간은 작점고개에서 우두령까지 약 30.3km거리를 한 구간으로 잡아 우두령에서 시작해서 종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울산에서 출발, 많이 내린 눈으로 인해 우두령으로 버스가 접근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작점고개로 갔다

작점고개도 겨우 올라선 버스는 우리를 내려주고 바로 되돌아가지 못했다...많은 눈 땜에

그리고 많이 내린 눈이 변수로 작용해 진행이 쉽지 않았다

선두가 눌의산에 도착 점심을 먹고 가는데까지 가자며 출발했으나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가성산에서 선두와 후미가 만나 만나 상의한 결과 오늘은 괘방령까지만 가기로 결정하였고 가성산에서 배낭털고 가자고 했다

장거리 산행을 예상하고 준비한 간식 꺼리가 배낭에서 쏳아져 나오는데 너무 많았다

그덕에 배는 실컨 채우고 하루종일 눈 구경 실컨 한 즐거운 산행이였다

▲ 24구간(지기재--작점고개)을 결석하다보니 작점고개는 처음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온통 하얗게 덮힌 눈 세상에 모두들 흥겨워 신이났다, 이렇게 인정샷도 날리면서

▲ 아담한 작점고개 표지석인데 근접촬영하니 커보이네요

▲ 작점고개에 위치한 '능치쉼터' 정자, 27명의 정산특파원 대간꾼들이 산행준비에 바쁩니다

아무리 바빠도 출발 전 단체 인정샷은 하고 가야지요 "백두대간 완주하는 그날까지"

▲ 우두둑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뽀드득 눈을 밟으며 가는 산행 생각만 해뵈도 흥이 나네요

▲사기점고개 임도에서 잠시 숨고르기 하고 출발합니다.

▲ 대간 길 한 장소에서 탑승하고 내리는 복희야님과 거북이님  

▲ 천둥님과 청운님, 오늘도 다들 신이 났네요

▲눈 뒤집어 쓴 고목이 꼭 미사일 발사하는 것 같아서,,,,나만의 생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서 자화상

▲ 사기점 고개를 지나 금산으로 향하면서 뒤돌아 본 난함산(해발 733.4m)

대간길에서 비켜나 있는 난함산(卵含山)은 묘함산(卯含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한국통신의 무선통신 중계소가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지도에 '卯含山'으로 표기돼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현지명은 난함산이다.

▲ 금산(해발370m)

채석장 개발로 대간 자락의 북사면 절반이 사라진 산으로 자병산과 더불어 대표적인 백두대간 훼손지역으로 꼽힌다

일제때부터 석재를 파기 시작하다 해방 후 중단되었으나 국내 굴지의 철도용 궤도자갈 생산업체인 삼동흥산이

지난 68년부터 경북 김천시와 영동군이 경계를 맞댄 추풍령 자락 금산에 채석장을 내고

산 정상을 중심으로 영동군쪽 절반을 폭약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채석장을 중단하고 산사태 방지를 위해 철망으로 정리 방치되어 있다

금산에 선 산적회장님과 복희야님


추풍령에서 바라 본 가야할 마루금 우측부터 눌의산, 장군봉, 가성산

추풍령 기념비로 향하면서 바라 본 멀리 눈덮힌 지장산(해발771m)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한 많은 사연이 있는 추풍령 표석

추풍령의 천하대장군과 솟대

▲ 추풍령에서 뺑키통님, 복희야님, 나

이곳 대평지하도를 지나 좌측으로 진행, 다시 고속도로 밑을 통과 눌의산으로 향한다

눌의산 직전에서 따뜻한 국물로 점심 해결하고, 뇌관으로 제조한 폭탄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출발한다

점심 해결 후 출발하는 복희야 형님▲

눌의산의 산적 회장님

복희야 형님

명품 막조님들

명품 막조에 나도 끼여야.....하루종일 눈밭에서 눈요기하고 눈과 함께한 즐거운 추억에 감사하다

자화상

정상석 없는 해발 606m의 장군봉, 이곳에서 한참을 떨어졌다 다시 가성산으로 치고 올라야 한다

장군봉은 무사 장군이 아니라 장가 성씨의 총각 長君이라는 설이 있다

가성산, 여기서 오늘 함께한 대간꾼 27명이 모여 우두령까지 포기하고 괘방령까지 가기로 결정한다

우두령까지 포기하다 보니 배낭속에 아껴둔 것들 다 묵고 가자며 꺼내는데 선두조가 놀랜다 너무 많다고

그래도 물건 묵고 즐긴건 즐겨야 한다며 끝까지 배낭털이 하고 출발한다

실은 우두령까지 갈 것에 대비 중간 요기하기 위해 조금씩 더 준지한 것인데 우두령까지 가지 않아 한번에 꺼낸 것이라 많아 보였다

오늘 무척 힘들어 하는 삼신님

 자화상

수피야님

오늘은 선두와 후미가 없는 정상특파원 대간꾼 27명이 가성산에서 인정샷을 했다

이제 가성산을 지났으니 오르고 내리고를 몇번하면 괘방령이다 눈 밭에 즐기면서 가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폼도 잡아보고 말입니다.

고도가 낮아지니 나무의 눈이 바닥으로 향해 하나 둘 떨어지네요

써니님, 수피야님, 삼신님...어서오이소

고도가 낮아져도 이렇게 멋진 소나무 눈꽃이 계속 이어져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네요

괘방령에서 화악산(해발1,111m)까지 5.7km를 가야하네요...담에 이번에 못간 구간 한 코스 잡아 와야겠죠 

괘방령(掛榜嶺)---해발 300m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로서 추풍령 못지 않는 큰 길이였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슨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키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장군의 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으며

이곳에서 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흐른다

장원급제길 괘방령과 추풍령

옛날 과거길 괘방령은 넘어가면 장원급제 방이 내걸렸고 추풍령을 넘어간 벼슬아치는 추풍낙엽처럼 벼슬자리가 떨어졌다는 설이

전해져오는 괘방령과 추풍령 --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추풍령으로 쳐들어 갔다가 괘방령으로 쫓겨났고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추풍령으로 남진했다가 괘방령으로 퇴각했다는 역사가 전해오는 이 두 고개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